박춘태 재외기자
박춘태 재외기자

얼마 전 뉴질랜드 남섬 카이코우라(Kaikoura)의 대표적인 고래 관광업체 ‘Whale Watch Kaikōura’가 법원으로부터 24만 6500달러(한화 2억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직원들이 일상적인 업무 중 열려 있던 해치(hatch, 배의 갑판 출입구)에 추락하는 사고가 잇따랐고, 회사가 안전장치나 보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피해자 중 한 명은 배 위에서 호스를 들고 물청소를 하다가 바람을 피하려 뒤로 물러서다 해치로 추락했다. 2미터가 넘는 깊이로 떨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을 잃었고, 한동안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그녀는 여전히 악몽과 두려움에 시달린다며 “작아져만 가는 해치 속으로 천천히 빠져드는 꿈”을 꾸고,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추락하며 큰 부상을 입었다.

법원은 회사가 이미 수년 전부터 Maritime NZ(뉴질랜드 해양안전청)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구조적 개선을 하지 않은 점을 중대 과실로 지적했다. 단순히 “조심하라”는 지시만 반복했을 뿐, 물리적 안전장치 설치라는 근본적 대책은 뒤로 미뤘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회사 측의 책임을 엄중히 물었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구조적 방치에서 비롯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국가와 사회가 안전을 다루는 태도다. 뉴질랜드 법원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존중하고, 기업이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분명히 묻는다. 벌금 액수 또한 단순 보상 차원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이 매우 진지하게 다뤄졌다. “혼자 피를 흘리며 깨어난 순간의 공포”, “작아져만 가는 해치 속으로 추락하는 악몽” 같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는 사회 전체가 피해자의 경험을 존중하고 공유하며, 그 아픔을 함께 기억하자는 문화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기업의 최고경영자까지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 직원들의 안전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같은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개 사과했다. 한국에서는 종종 사고 발생 후 “유감이다”라는 짧은 사과나 변명성 해명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는 기업 리더가 사회적 책임을 지는 자세를 공식 석상에서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안전사고는 빈번하다. 건설 현장 추락 사고, 공장 내 안전장치 미비로 인한 재해, 대형 참사까지 우리는 숱하게 경험해 왔다. 그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은 피해자 가족의 눈물, 기업과 기관의 책임회피, 그리고 사회의 빠른 망각이었다.

대표적으로 몇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떠오른다. 19세 청년이 홀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안전매뉴얼은 있었지만, 인력 부족과 하청 구조 속에서 ‘1인 작업’이 강요됐다. 사고 후 책임자들은 서로 책임을 미뤘고, 제도 개선 목소리는 거셌지만 시간에 따라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다.

또한 한국에서는 법적 처벌 수위가 뉴질랜드에 비해 훨씬 낮은 경우가 많다. 기업이 내는 벌금은 종종 “영업 하루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벌금을 ‘사고비용’ 정도로 취급하고, 근본적인 안전 투자에는 소극적인 악순환이 이어진다.

뉴질랜드는 “안전”을 단순한 규칙 준수가 아닌,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가치로 여긴다. 한 명의 직원이 다쳤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조직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본다.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의 실수”나 “불운한 사고”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법과 제도도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피해자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공감되지 못하고, 언론 보도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안전은 과연 비용인가, 아니면 기본권인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보자.

첫째,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피해자가 겪는 공포와 고통을 사회 전체가 귀 기울이고, 그것을 제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절실하다. 안전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투자이며,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뉴질랜드처럼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 사과하고 대책을 내놓는 태도가 한국 사회에도 자리 잡아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의 실효성 확보가 중요하다. 형식적인 규제나 선언적 지침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벌금이나 처벌 수위 또한 기업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충분히 강력해야 한다.

뉴질랜드 카이코우라의 고래 관람선 사고는 단순히 한 회사의 과실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안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사람의 존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한국 사회도 이제는 “효율”과 “속도”만을 앞세우는 산업화의 논리를 넘어,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권이며,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경제 논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그 고통이 존중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배우고 바뀌는 사회다. 뉴질랜드의 사례는 그 길을 향해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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