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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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영양왕, 임유관을 기습하다

598년, 고구려 영양왕은 말갈기병 1만기를 이끌고 하북 요서지방의 수나라 임유관(臨渝關)을 선제공격하였다. 고구려의 북쪽에 인접한 말갈은 고구려에 통합되어 중요한 군사자원으로 역할하였다. 발해를 건국한 고구려 장수 대조영이 속말말갈 출신이다. 말갈은 고대의 숙신으로 시대에 따라서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만주족으로 다르게 불렸다.

임유관은 수나라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이 지키고 있던 수나라의 최전방 요충지로서 고구려와 경계지대이었다. <구당서> 고구려전에 "고구려는 서북으로 요수(遼水)를 넘어 영주에 이르렀다(西北渡遼水至於營州)"고 하였다. <북사> 고구려전에는 "서로는 요수를 넘어 2천리에 이르고, 북으로는 말갈과 천여리에 이웃하였다(西度遼二千里, 北隣靺鞨一千餘里)"고 하였다.

얕잡아 보았던 고구려의 치고 빠지는 전술에 일격을 당하자 대노한 수문제는 5남 한왕(漢王) 양량(楊諒)을 원수로 삼고, 장군 왕세적(王世積)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수륙으로 요동으로 나아가 고구려를 치도록 명했다. 수군은 도중에 고구려군에게 기습을 당하고 또 풍랑을 만나 패하고 말았다. 뜻밖의 패배에 놀란 수문제는 마침 영양왕이 '요동의 분토(糞土)에 있는 신(臣) 고원'이라고 사죄문을 보내자 침공계획을 중단하고 내치에 전념하였다. 고구려의 외교전술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요수(遼水)가 넓다고 하나 어찌 장강(長江)만 하겠는가?"

589년에 남조의 진(陳, 557년 ~ 589년)을 멸하고 중원대륙을 통일한 수문제는 고구려 왕에게 "비록 번부(藩附)라고는 하나 정성과 예절을 다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였다. "그대의 지방이 비록 땅이 좁고 사람이 적다고 할지라도 지금 만약 왕을 쫓아낸다면 비워둘 수 없으므로, 마침내 관청의 아전과 하인을 다시 선발하여 그곳에 가서 다스리게 해야 할 것이다......요수(遼水)가 넓다고 하나 어찌 장강(長江)만 하겠으며 고구려 인구의 많고 적음이 진(陳)만 하겠는가?''고 은근히 토벌할 뜻을 비췄다.

머지않아 그 화가 고구려에 미칠것을 염려한 평원왕(平原王)은 수나라와의 전쟁대비에 골몰하다가 사망했다. <삼국사기>에 "32년(590년)에 왕이 진(陳)이 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병기를 수선하고 곡식을 축적하는 것으로 막고 지켜낼 방책을 삼았다."고 기록하였다. 고구려는 비록 조공사신은 보냈지만 왕의 직접 입조요구는 끝내 거절하였다. 고구려는 시조 추모왕 이래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독자적인 천하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자주국가이었다.

평원왕에 이어 590년에 즉위한 영양왕은 8년동안 전쟁준비를 가다듬고 수나라에 선빵을 때렸다. 고구려와 수,당 2대 왕조에 걸쳐서 전쟁이 일어나 70년동안 동북아를 뒤흔들었던 천하대란은 영양왕의 임유관(臨渝關) 기습으로 부터 촉발되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흥하고 망한 것은 모두 이 고구려와 관계가 된다. 수문제가 새로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그 당시에 돌궐은 이미 머리를 조아리고 복종하였다. 양제가 순시하다가 친히 돌궐의 장막에 이르러서 우연히 고구려의 사신이 계민가한의 처소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배구(裴矩)의 한마디 말로 인하여 드디어 이 화를 일으켰다. 배구(裴矩)는 천하의 대세가 이미 합해진 것을 보고는 역시 고구려에서도 조공을 바치게 하여 천하를 얻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천하대란(天下大亂)의 단서가 여기에서 발단될 것은 알지 못하였다."

《도서편》(圖書篇)

수양제를 따라 돌궐을 방문한 배구(裴矩)는 계민가한의 처소에서 고구려의 사신이 먼저 와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양제에게 상소를 올려 말했다.

"고(구)려(高麗)의 땅은 본래 고죽국(孤竹國)의 땅입니다. 주나라 시대에 기자를 봉했는데 한나라 때 나뉘어 삼군이 되었으며, 진(西晉)나라 때에 요동에 통합되었습니다. 지금은 신하도 아니고 별도의 외역(外域)이 되어, 선제(수문제)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셨기에 오랫동안 정벌하고자 하셨습니다. 다만 양량(楊諒)이 불초하여, 출격했으나 공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시대가 되었사온데, 어찌 그들을 정벌하지 않으시고 관대지경(冠帶之境, 중화의 땅)을 만맥지향(蠻貊之鄉, 이민족의 소굴)으로 두려 하십니까. 지금 고구려의 사자가 돌궐에 가서 돌궐왕 계민을 만나 서로 나라끼리 합치기를 논하고 있습니다. 염려만 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황제께서 걱정하실 일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입조하도록 명령을 내려 이르도록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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