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톈진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가진 기업인이 있다. 1994년 창업 이후 30여 년간 중국 의약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며 조선족 사회의 대표적 기업가로 자리 잡은 심재관 청송제약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9월 27일 ‘제3회 한중우호체육대회’를 마친 다음 날, 톈진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지역 사회의 후원자, 그리고 조선족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가난했던 유년기, 그리고 약학의 길
심 회장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부친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교사로 일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서 반신불수가 되었고, 그 여파로 가세는 크게 기울었다.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던 그 시절, 그는 어렵고 가난한 집안을 지켜보며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처음엔 의사를 꿈꿨지만, 당시 중국에서 의사가 되면 산간 벽지 등에서 의무 복무를 해야 했다. 그는 이런 현실적 고민 끝에 진로를 약학으로 틀었고 심양대학 약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바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의약 시장을 꿰뚫어보던 그는 한국의 종근당, 유한양행, 중외제약, 국제약품 등 우수한 의약품을 중국 정부 허가 하에 반입해 유통·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내 제약 산업에 대해 남들보다 빨리 미래를 본 것이다. 최근 청송제약그룹은 해외 반제품을 들여와 중국에서 완제품으로 생산한 뒤 FDA(미국), EMA(유럽) 인증을 받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심 회장은 “2026년부터 유럽과 북미 시장 수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골다공증 치료제와 항생제는 이미 자체 생산 중이며, 안과·조울증 치료제 역시 수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내수용 의료기기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그의 말처럼 중국 제약 시장은 아직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후발주자다. 하지만 상승세가 가파르다. 청송제약은 2024년에만 신약 신청이 400건을 넘었고, 40여 종의 약품은 이미 허가를 획득했다. 심 회장은 “중국 정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의약기술 육성에 집중한 결과, 최근 2~3년 사이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CT·MRI 같은 의료기기 분야도 중국산 신형 모델 출시가 임박해 시장 변화가 예상된다.
창립 31년을 맞은 청송제약그룹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인재’다. 직원 300명 중 3분의 1이 R&D 인력이며, 매출의 8~12%를 안정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신약 개발 실험과 특허 비용, 공장 자동화, 해외 진출 준비까지 보통 중견 제약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 규모다.
2024년 청송제약의 매출은 16억 위안(한화 약 3000억 원). 수치만 보면 대기업이 아니지만, R&D 중심 경영과 해외시장을 향한 도전 정신은 결코 작지 않다.
심 회장은 사업 못지않게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중국 서북 지역, 티베트·사천 등 고원 지대 노인들을 위한 백내장 무료 수술은 그의 대표적인 봉사 프로그램이다.
올해만 벌써 세 차례 의료진 10여 명을 동원해 100명의 노인들에게 무료 수술을 제공했다. 올해 50명, 지난해 29명, 재작년 49명의 시력을 되찾아주었다. 한 번 출장을 나가면 검진부터 수술까지 약 일주일이 소요되며, 모든 비용은 심 회장이 부담한다. 무엇보다 그의 자선활동은 한족, 조선족, 소수민족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만도 300만 달러(한화 45억원)상당의 의약품을 기부했다. 이런 활동이 톈진방송국에서도 방영되면서 중국인은 물론 소수민족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는 본사가 있는 톈진 지역에서도 고아, 장애 학생, 조손가정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노인들을 위해서는 안약·관절약·백내장 수술 등 다양한 의료 지원을 펼치고 있다.
그는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회의 빈틈을 채우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라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25년 동안 무려 1700명의 학생에게 매달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7년간의 긴 지원이다.
조선족 사회에 대한 그의 애정도 남다르다. 그는 6년 전 천진 조선족 원로들의 요청을 받고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이후 매년 약 100만 위안(1억8000만 원)을 의약품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원일성 조선족연의회 부회장은 “회장님은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하셔서 소외계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며 “효심이 강해서 80세 이상 조선족 노인에게 효도금을 드리고, 필요 약품을 챙겨드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심 회장은 인터뷰 내내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봉사의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우연히 시작했는데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어지고 있네요. 힘닿는 데까지, 그저 그렇게 합니다.”
겸손한 말이었지만 그의 실천은 결코 가볍지 않게 보였다.
해외시장 진출, 신약 연구, 의료기술 개발, 사회공헌까지. 그의 관심사는 넓었지만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어려웠던 성장기, 의사가 되려다 약학을 선택한 사연, 창업 초창기의 고난, 조선족 사회에 대한 애정… 그의 삶은 사람을 향해 있었고, 청송제약의 비전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후원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를 위해 다시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심 회장의 조용하지만, 묵직한 신념은 오늘도 톈진 곳곳, 그리고 중국 전역의 수많은 노인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빛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