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국학교 이사장들이 11월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황복희 기자]    
재외한국학교 이사장들이 11월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황복희 기자]    

세계 각지의 재외한국학교 이사장들이 11월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 모였다. 전 세계 16개국 34개 재외한국학교를 대표해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 한국학교 이사장 10여명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무상교육 도입을 포함한 교육 재정 전반의 국가적 책임을 강화해 달라고 촉구했다. 학생·학부모에게 과도하게 전가된 학비 부담을 국가가 나눠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였다.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 해외 산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돼”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은 재외한국학교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핵심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16개국 34개 재외한국학교에서 약 1만3000명의 학생과 1300명가량의 교직원이 한민족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교육환경은 여전히 국내와 비교해 크게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학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일본학교 등 무상교육이 제공되는 현지 학교로 전학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현실은 헌법이 보장하는 ‘균등한 교육 기회’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백 의원은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외한국학교는 해외의 작은 대한민국”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 이상철 회장(소주한국학교 이사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재외동포 교육의 국가 책임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외한국학교가 해외동포 자녀들이 대한민국 초·중등 정규 교육과정을 그대로 이수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설립한 기관임에도, 현실은 여전히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고교 무상교육까지 시행 중인데, 정작 해외 한국학교 유치원과 초등학생이 기본적인 무상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명백한 국가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켜온 700만 재외동포의 기여를 정부가 기억해야 한다며, 재외한국학교 지원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동남아 실정,“학비 1천만 원 넘어 다문화 자녀 더 취약”

상하이, 광저우, 쑤저우 등 중국 지역 이사장들은 최근 한국 기업의 철수와 인구 이동으로 학생 수가 줄고 있지만, 남아 있는 가정의 학비 부담은 갈수록 더 무거워지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톈진한국국제학교 박후제 이사장은 “재외한국학교의 연간 학비가 1000만 원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이는 한국의 주요 사립대 등록금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재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다문화 가정 자녀인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 배경을 갖고 있어 교육 접근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학비 부담 때문에 현지 로컬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적·정체성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박 이사장은 지적했다. 1만3000명의 재외한국학교 학생 전체를 무상교육하는 데 1300억 원 정도면 가능하며, 이는 국가 재정 규모를 감안할 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베트남 지역의 상황은 더욱 복합적이다. 현지 재학생 2100명 가운데 약 40%가 다문화 가정 학생이며, 이들 중 많은 비율이 경제적 이유로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해 베트남 로컬학교로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 국적 취득을 준비할 기회를 잃는 경우도 있어, “이 아이들이 한국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 이상철 회장이 폐교 위기에 처한 전세계 한국학교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 이상철 회장이 폐교 위기에 처한 전세계 한국학교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싱가포르...“20년 넘게 운동장 없이 학교 운영, 고비용 구조 개선 시급”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는 매우 특수한 부담을 안고 있다. 싱가포르는 모든 토지가 국유지로 관리되기 때문에 임대료가 극도로 높고, 그 결과 학교는 운동장이 없는 상태로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이는 교육 환경의 기본 인프라조차 갖추기 어려운 고비용 구조 때문이며, 국가 간 협력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오양택 이사장은 밝혔다.

해외 한국학교 지원은 국가 미래전략

재외동포사회는 오래전부터 재외한국학교를 해외 공교육 체계의 일부로 명확히 규정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학부모 개인의 부담에 맡기거나 동포사회의 헌신에 의존해 지속해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학교의 장기적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경제적 성과가 국가 전체 수입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그 해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포 가정의 자녀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는 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는 정부와 국회에 대해 재외한국학교 유치원·초등 무상교육 도입, 학교 운영비 공적 지원 확대, 다문화·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실질 지원 강화를 포함한 정책 조치를 요청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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