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중국 톈진시 소재 인성기전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후제 사장.
지난 9월 26일 중국 톈진시 소재 인성기전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후제 사장.

“중국에서 동업은 무조건 망한다”. “특히 중국인과 동업을 했을 때 실패 확률은 더 높다”는 게 정석처럼 굳어있다. 이런 세간의 속설을 뒤집고 중국에서 동업을 통해 작지만 단단하게 성공의 길을 열고 있는 한국인 기업가가 있다. 바로 중국 톈진에서 스테인리스 전자부품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후제 인성기전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6일 오전 신원칠 서봉전자 사장과 톈진의 인성기전 현장을 찾아갔다. 1000여평의 공장 내부는 스테인레스 절단 소리와 함께 힘차게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들렸다. 잠시 공장을 둘러보고 2층 박 사장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중국 파트너와 2000년대 중반 시작한 동업을 지금까지 이어오며 LG전자의 협력업체로 우뚝 섰다고 했다. 돈 보다  파트너와의 ‘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이를 토대로 '투명경영'을 실천한 결과라는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 발 관세전쟁 이야기부터 꺼냈다. 최근 멕시코가 자국산 보호를 위해 내년 1월1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리기로 해 연휴 기간에도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LG전자가 11월4일까지 납품을 완료해야 한다고 해서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10월 초 연휴기간 동안 4일간 근로자들을 출근시켜 공장을 돌려야 납기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휴기간에 직원들을 출근시키려면 일당의 300%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기업 현장은 늘 변수가 많습니다.”

LG전자 창원공장 관리직에서 창업자의 길로 들어서다

박 사장이 중국에 발을 디딘 것은 2006년이었다. LG전자 창원공장에서 품질관리와 생산기술을 맡아오던 그는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접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LG에서 일하면서 늘 생각했죠. 협력업체들이 왜 관리를 저렇게 못할까. 나도 언젠가는 내 공장을 운영해보고 싶다...당시 용의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뱀의 머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학벌도 전문대 출신이라 더 큰 승진은 어렵다고 봤고, 정년 이후를 준비하고 싶었던 거에요.”

때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는 자신의 친구가 중국에서 공장을 설립했는데 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요청도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시 박 사장의 근무평점은 5년간 A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명퇴 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회사측의 설명이었다.

가족들은 물론 회사 임원 및 노동조합까지 나서서 그의 퇴사를 막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세일즈맨으로서 그의 연봉은 6000만 원. 남부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그는 이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승부사 기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보다 20% 낮은 조건으로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3개월 만에 퇴사를 하면서 결국 생각보다 빨리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초기 자본금은 한국에서 가져온 2억 원. 그러나 설비 투자와 운영자금으로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중국 파트너가 시급하지 않은 엉뚱한 곳에  많은 돈을 투자를 한 것이 문제가 됐다. 6개월이 지나자 금고는 바닥이 나고 적자가 시작됐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렸다.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손을 빌리는 등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족의 희생이 매우 컸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진입하자  박 사장에게 동업을 청산하라는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함께 시작한 의리를 저버릴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울러 그는 원가분석은 물론, 재무 회계 등을 직접 관리하며 파트너에게 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 땀흘려 번 돈만 내 돈이라는 원칙이 있었어요. 그러니 숨길 게 없었죠.”

박후제 인성기전 사장이 사무실에 걸려 있는 중국지도 앞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시 염두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박후제 인성기전 사장이 사무실에 걸려 있는 중국지도 앞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시 염두해야 할 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위기 속 기회, LG 협력사 등록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2007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연 10% 이상 증가하면서 LG전자의 전자레인지 부품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소형 프레스 설비로는 장기적인 수익창출이 어렵다고 판단, 과감하게 160t, 200t 급 중형 설비투자로 눈을 돌렸다.  빚을 내고, 설비투자 계약금도 빌렸다.

“설비가 도착하자마자 밤낮으로 기계를 돌렸습니다. 3개월 만에 곳간에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 덕에 2008년 LG 협력사로 공식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등록된 후발주자였죠.”

이후 인성기전은 스테인리스 외관 부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까다로운 품질 기준 때문에 대다수 업체들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그는 끈질긴 품질 개선 노력으로 불량률을 낮추며 신뢰를 쌓았다. “남들은 한 두 번 시도하다 포기했지만, 저는 오히려 두번  세 번을 넘어 만족할 때까지 계속 도전한것이 살아남은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성기전의 동업 구조는 독특하다. 지분은 서류상 박 사장이 100% 보유하지만, 수익은 철저히 5대5로 나눴다. 중국 파트너는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 배당만 챙겼지만, 그 신뢰는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중국에서 동업은 2~3년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불신이 생기면 끝이죠. 하지만 저희는 19년 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투명한 경영이었습니다. 공장 관리와 원가 분석을 철저히 공개했고, 파트너에게도 사실 그대로 공유했던 거예요.”

하지만 종종 직원들이 중국 파트너에게 허위 보고 등 과잉 충성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매사 당당했던 그는 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과감하게 과잉충성하는 이들을 정리하면서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고하는 문화’를 심었다. 이런 장인의 고집이 공정성과 투명한 회사를 만드는 기둥이 된 것이다.

“투명경영 덕분이었죠. 중국 파트너도 처음엔 의심했지만, 공장에 올 때마다 매출이 늘고 시설이 개선되는 걸 보고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어요.”

투자자는 매년 원금 이상의 배당을 챙기며 만족했고, 박 사장은 경영권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구조야말로 동업 성공의 비결이었다.

톈진시 인정기전 앞에서(사진 왼쪽 부터 신원칠 서봉전자 사장, 박철의 재외동포신문 대표, 박후제 인성기전 사장, 이나연 재외동포신문 재외기자)
톈진시 인정기전 앞에서(사진 왼쪽 부터 신원칠 서봉전자 사장, 박철의 재외동포신문 대표, 박후제 인성기전 사장, 이나연 재외동포신문 재외기자)

내실 경영과 사람 중심의 철학

인성기전의 현재 매출은 연 160억 원 수준. 직원은 약 100명이며, 이직률은 거의 ‘제로’다. 부부 직원, 가족 단위 근로자가 많아 ‘가족 같은 회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박 사장은 “항상 가장 어려운 위치의 직원부터 챙긴다”며, 경비·청소직부터 보너스와 수당을 아끼지 않는다.

“돈을 벌었다고 내가 다 가져가면 마음이 불편해요. 설·추석 보너스도 챙겨주고, 여름휴가 지원도 합니다. 그래야 함께 오래 갈 수 있죠.”

실제로 공장 내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피해 직원에게 지금도 매달 급여를 지급하며 책임을 다하고 있다. “생산보다 중요한 건 안전과 품질입니다. 직원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생산을 멈출 권리를 줍니다.”

“대기업과 협력하려면 결국 품질과 신뢰뿐입니다. 로비나 인맥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중국 시장뿐 아니라 인도 등으로 생산거점이 확대되는 변화도 주시하고 있다. “언젠가 LG의 물량이 인도로 이동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어디서든 살아남는 건 결국 품질 개선과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박 사장의 창업기는 ‘중국에서 동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편견을 깬 보기 드문 사례로 한국 중소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철저한 투명성과 신뢰, 포기하지 않는 장인 정신이 20년 동업을 가능하게 했다.

“내가 LG에서 배운 게 있다면, 끝까지 문제를 개선하는 습관입니다. 안 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입니다.”

그의 말처럼, 동업은 원래 불가능한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박 사장은 그 길을 현실로 만들며 새로운 경영 교훈을 남겼다. 박 사장의 이런 스토리는 단순한 기업인의 성공담을 넘어, 해외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법을 보여준다. 철저한 원가 관리, 품질 개선에 대한 집념, 직원과의 신뢰, 그리고 동업의 의리를 지켜낸 투명 경영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버텨내는 겁니다. 버티면서 품질을 개선하면 반드시 기회는 옵니다.”

한국국제학교 고사위기로 몰리고 있다

한편  박사장은  기업경영 외에도 현재 톈진한국국제학교 이사장까지 맡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매년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학교재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한때 1000명 안팎이던 학생들이 현재 370명으로 감소하는 등 학교 현장이 고사위기로 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초중고 수업료가 각 600만원, 700만원, 800만원 수준으로 급식비 등을 감안하면 1000만원 내외가 소요된다고 했다.

한국의 사립대학교 등록금 수준에 버금가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박 사장은 정부는 물론, 현지 기업인들을 찾아다니며 교육재정 타개를 위한 방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 2월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등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한국국제학교 학생들 상당수가 빠져나간데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엄청난 교육비 부담을 안고 학교를 근근히 지켜내고 있다"며  전향적인 정부 정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말 한국으로 건너가 국회 교육위원장 등 관계자를 만나 대책을 요청하는 등 톈진-북경-한국을 오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국제학교의 현실을 외면하는것은 미래 해외전문가 양성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전 세계 34개  한국국제학교를 살려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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