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복잡하고 원초적인 질문에 국가가 직접 대답하려 나선 사례가 있다. 바로 최근 뉴질랜드의 교육제도 개편 선언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6월, 20여 년간 이어져 온 국가학력인증제(NCEA)를 전면 폐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 자격 체계 도입을 2026년부터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생과 고용주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역량을 현재 제도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자기반성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NCEA 레벨1 완전 폐지, 그리고 레벨2, 3을 완전히 새 자격으로 대체한다는 선언이다. 이는 더 이상 ‘자유롭게 과목만 늘리는’ 선택적 유연성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어와 수학을 국가 공통 필수로 지정하고, 기초 역량을 직접 평가한다. 더불어 단순히 ‘합격/불합격’으로 나누던 평가를 100점 만점·A~E 등급체계로 바꾼다. 과목은 최대 5개만 선택할 수 있고, 4과목은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 또한 모든 학교와 학생이 하나의 국가 기준, 바로 전국 공통 교육과정(9~13학년), 을 따라가야 하며, 산업계와 연계해 진로교육까지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2028년엔 기초 역량 인증, 2029~2030년엔 고등학교 자격부터 완전히 새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이번 변화의 본질은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니라, 국가가 미래 세대에게 최소한의 ‘공통 기준과 기초 역량’을 다시 직접 책임지겠다는 명확한 약속이다.
'자유와 다양성'은 그 자체로 이상적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교육계와 사회 전체는 오랜 시간 그늘까지 성찰했다. 자율과 유연성만 내세운 결과, 오히려 지역·학교별 격차가 커졌고, 과목 무제한 선택은 학생들이 자격증 따기 위한 최소한의 쉽고 작은 단위만 택하는 현상을 부추겼다. 실제로 뉴질랜드 학생들의 문해력·수리력 저하는 대학·고용시장에서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대로 가면 국가의 미래가 위험하다"는 단호한 정치적 결단이 사회 각계의 공감과 숙의를 동반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본질을 잡으려면 쉽지 않은 길도 가야 한다.” 현장 교장, 교사, 교육전문가, 그리고 재계를 아우르는 용기가 거대한 개혁을 끌어낸 것이다.
한국 역시 세계적으로 명확한 ‘공통 기준’과 ‘기초 역량 확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이뤄왔다. 전국 단위의 수능, 내신 절대평가, 모든 학생이 따라야 하는 교과과정 등은 흔들림 없이 지켜진다. 하지만 우리 또한 과목 선택과 진로의 경직성, 입시의 과도한 경쟁, 학교 내 격차 등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한때 한국 내에서 “뉴질랜드처럼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적도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 뉴질랜드가 오히려 다시 “국가가 최소한의 기준을 갖고 기본을 직접 책임지겠다”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이 점에서 서로의 미래를 비추어보는 일은 의미가 크다.
교육이란 국가의 백년지대계다.
이번 뉴질랜드의 교육 대전환이 혼란과 진통 없이 이뤄질 리 없다. 농어촌·저소득 지역 학생, 소규모 학교, 기득권을 가진 기존의 시스템 모두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기본’을 물을 용기, 그리고 이를 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논의하는 ‘민주주의적 품격’ 아닐까.
한국 사회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왜 배우고 가르치는가?
교육의 참된 목적과 미래 세대를 위한 최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완벽한 제도는 없다. 하지만 본질과 미래에 대해, 두려움 없이 변화에 뛰어드는 사회적 공감대는 언제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뉴질랜드가 내린 결단, 그리고 ‘기본’이라는 낱말 앞에 선 집단적 용기는 한국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우리도 언젠간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