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교육학 박사
박춘태 교육학 박사

남반구 뉴질랜드의 겨울밤, 하늘에 일곱 개의 별이 다시 떠오른다. 마오리의 새해를 알리는 마타리키(Matariki)다. 이 별자리는 단순한 천문 현상을 넘어, 조상을 기리고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며, 수확에 감사하고 미래를 기원하는 마오리의 깊은 정신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별빛 아래에서 한류가 새로운 의미로 피어나고 있다.

마타리키는 오랜 세월 마오리 공동체의 중심에 있었다. 별이 다시 떠오르는 시기, 마오리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이 모여 조상의 이름을 부르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이 전통은 뉴질랜드의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며, 이제는 모든 인종과 세대가 함께하는 다문화 축제로 확장되었다. 학교, 예술기관, 마라에(marae),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마타리키의 정신이 울려 퍼진다.

이 축제의 본질은 ‘함께’에 있다. 각기 다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문화를 나누며, 새로운 공동체의 미래를 그린다. 마타리키의 별빛은 단순히 하늘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한류는 이제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K-팝, 드라마, 영화, 음식, 패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한류의 힘은 ‘콘텐츠’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한류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공감’과 ‘연결’의 힘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예술, 예를 들어 부채춤이나 사물놀이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자연과 인간, 공동체의 조화를 노래한다. 한복의 곡선, 북소리의 울림, 부채의 춤사위에는 세대를 잇는 이야기와 정서가 담겨 있다. 이러한 한류의 본질이 마타리키와 만날 때, 우리는 문화의 진정한 융복합을 경험하게 된다.

마타리키 축제의 현장에서 한류는 더 이상 ‘외부의 문화’가 아니다. 사물놀이의 북소리가 마오리의 전통 북과 어우러지고, 부채춤의 곡선이 하카(haka)의 힘찬 동작과 나란히 선다. 한복을 입은 현지 아이들이 마오리 전통 문양을 그린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의 문화를 체험한다.

이러한 만남은 단순한 ‘공연’이나 ‘체험’의 차원을 넘어선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질 때, 우리는 ‘다름’이 아니라 ‘함께함’의 가치를 배운다. 마타리키의 별이 조상의 이름을 부르듯, 한류의 예술은 새로운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이 순간, 문화는 경계를 넘어선다.

한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존’과 ‘존중’이다. 한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새롭고 화려해서가 아니다. 한국 문화가 타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어우러질 때, 진정한 감동이 피어난다.

마타리키 축제에서 한류가 보여준 모습은, ‘우리 것’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문화와 나란히 서는 것’,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한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임을 보여준다. 한류는 이제 ‘일방적인 수출’이 아니라, ‘함께 걷는 문화’, ‘생활 속에서 피어나는 문화’로 거듭나야 한다.

마타리키와 한류의 만남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성장시키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마오리의 별빛 아래에서, 한류는 새로운 의미로 피어난다. 서로 다른 언어, 피부색,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웃고, 춤추고, 노래할 때, 우리는 문화의 진심이 언어와 경계를 넘어 전달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융복합의 현장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더욱 소중하다. 문화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성장시키는 자산이다. 마타리키의 별처럼, 한류도 ‘연결’, ‘존중’, ‘감사’, ‘공동체’라는 가치를 품고, 세계인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아야 한다.

뉴질랜드의 겨울밤, 누군가가 부채춤의 곡선을 떠올리고, 북소리의 울림을 기억한다면, 그 순간 한류는 또 하나의 별로 그 하늘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마타리키와 한류의 만남은, 문화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다.

한류의 미래는 거창한 스튜디오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바로 이런 현장에 있다. 현지 커뮤니티와 마주 서는 무대, 사람의 손에 닿는 부스, 웃음과 체험이 함께하는 공간. 그곳에서 한류는 진심을 담아, 세계와 함께 걷는 문화로 거듭날 것이다.

마타리키의 별빛 아래, 한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깊게 세계인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별빛은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과 연결의 빛으로 남을 것이다.

*글쓴이: 박춘태 재외기자는 대학교에서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뉴질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