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7일 미 연방대법원 앞에서 트럼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 모습. [워싱턴 AFP=연합뉴스]
6월27일 미 연방대법원 앞에서 트럼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 모습. [워싱턴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법체류단속 강화로 가뜩이나 불안한 미국 내 한인사회가 이번에는 출생시민권 중단 정책까지 더해져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연방 대법원은 현지시간 6월27일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에 대해 일시 중단 결정은 소송을 제기한 주에만 적용된다며 다른 주에서는 정책 시행을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의 효력 중단 가처분 결정을 얻은 22개 주와 워싱턴DC를 제외한 나머지 28개 주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이 그대로 시행된다. 적용 시점은 이번 판결로부터 30일 후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에는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거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 출생시민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구체적으로는 어머니가 불법으로 체류하거나 합법이라도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신분이며 아버지가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둘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도록 했다.

이에 최근 한인사회에서도 영주권을 아직 취득하지 못한 합법 체류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출생시민권 중단 정책과 관련해 문의 및 우려의 글들이 여러 개 올라왔다.

한 게시자는 “E2(취업) 비자로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근무 중이라 임신하게 되면 미국에서 출산할 예정”이라며 “그런데 미국에서 근무한 지 2년이 조금 안 된 상황이라 트럼프 정책으로 아이가 시민권을 못 갖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는 글을 올렸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직장을 다니며 영주권을 가진 남편과 결혼해 임신·출산을 고려 중인 김모(36) 씨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출생시민권에 이런 식으로 제약이 생기고 이민자의 삶을 더 어렵게 하는 정책들만 나오다 보니 불안과 걱정이 커진다”며 “당장 캘리포니아는 법원 결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출산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다만 현지 법조계에서는 출생시민권 제한 정책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생시민권이 미국 헌법에 규정된 조항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미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에 귀화했고, 미국의 관할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연방 대법원은 이날 판결을 내리며 출생시민권 금지 자체의 위헌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민법 전문가 최경규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에 “헌법에 어긋나는 정책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상식적인 행정명령이 아니라서 그 자체를 대법원에서 인정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라도 일부 주에서 시행이 된다 해도 당사자들이 개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송을 계속 거치다 보면 (정책이)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정책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미국에 반이민정서를 가진 유권자들이 많다 보니 그런 정서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 변호사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영주권 심사가 더 까다로워지고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게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급해지는 사람(한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준비를 안 하고 있던 사람들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영주권을 따려고 문의하는 경우가 전보다 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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