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위 재외기자
임용위 재외기자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나는 늘 노인회관이  주는 따스한 의미를 새삼 느끼곤 한다. 15년 전 멕시코를 떠나 미국에서, 그리고 지금 베트남 호치민에서까지, 이곳은 나에게 단순한 만남의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오전 10시 이후 어느 시간대든 노인회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러 세대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은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었다. 여기서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이민 1세대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베트남 땅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백발의 노인들, 혹은 곧 백발이 될 어르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연세의 흔적을 넘어 삶의 깊이와 지혜를 품고 있다.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듯, 그들의 흰 머리카락은 오랜 세월 쌓인 지혜와 경험의 상징이다.

나이 들면서 얻는 지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값진 선물이다. 스페인의 종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20대에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30대에는 이해 타산에 받쳐 살며, 40대에는 분별력을 갖추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지혜로운 경험으로 세상을 조망한다”고 말했다.

이는 나이 듦이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깊이와 의미를 더하는 축복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나 역시 이곳 노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 속담처럼,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교훈이 마음을 울린다. 그들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소중한 지혜의 등불이고, 그들의 삶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요즘 세상은 노인에 대한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잦은 잔소리와 잔소리의 상징이 된 ‘꼰대’라는 이미지, 그리고 겉모습의 수척함까지 겹쳐, 노인은 점점 멀어지고 외면당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 속에 담긴 깊은 삶의 이야기와 경험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의 모습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산티아고가 84일 만에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그 정신이 또 다른 세대를 향한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듯, 노인의 지혜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노인 문화, 그 근간은 바로 이러한 삶의 지혜와 경험의 귀한 가치를 인정하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이룩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바로 ‘공존과 존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길임을 다시 새기며, 오늘도 나는 노인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사회 곳곳에 아름다운 노인문화가 꽃피우기를 바라며, 내가 만나는 그들의 지혜와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삶의 파노라마와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하루하루로 살아가고자 한다. 노인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는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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