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1월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최종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1월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최종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지난 10월29일 있은 경주 정상회담에 따른 공동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 공동 설명자료)를 11월14일 각각 공개하며 총 385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통상·투자 협력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문서에는 조선·반도체·제약·항공·핵심광물·AI·원전·방산 등 여러 분야에서 양국이 추진하기로 한 구체적 조치들이 포함됐다. 양국이 이미 지난 7월에 발표했던 ‘대한민국 전략적 통상·투자 협정’의 연장선에서 마련된 후속 조치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확정된 내용이 공식 문서 형태로 정리된 것이다.

이로써 한미 정상이 합의한 ‘전략적 무역·투자 협정’이 양국 경제에 중대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 기업 투자, 관세 조정, 조선·반도체·AI 등 전략 산업 협력, 디지털·노동·환경 규범 강화까지 포함한 이번 합의는 단순한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양국 공급망과 안보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적 효과가 상당한 만큼, 양국이 얻게 될 이익과 감수해야 할 부담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韓, 관세 완화·전략산업 진출 확대...외환·방위비 부담도 커져

한국은 이번 합의로 미국 시장에서 일부 품목의 경쟁력을 즉각 높일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자동차 부품·목재·의약품 등에 적용하던 232조 관세를 15% 상한으로 조정하면서 제조업 전반의 가격 경쟁력이 개선된다. FMVSS(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 인증 차량 5만 대 상한이 폐지된 것도 한국 자동차 산업에는 의미 있는 변화다.

조선·원전·방산 분야 협력 강화는 특히 전략적이다. 미국은 한국의 조선업 투자를 환영하며 미국 선박의 한국 건조 가능성도 공론화했다. 핵추진 잠수함과 원전 연료 관련 협력 확대도 방산·원전 산업의 성장성을 높인다. 디지털·AI·데이터 이전 규범에서의 갈등도 완화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매년 최대 200억 달러의 외환 조달, 미국산 무기 250억 달러 구매, 주한미군 지원 330억 달러 등 중장기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 미국의 내국산 우대·보조금 체계는 그대로 유지돼, 한국의 대규모 투자에 비해 시장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美, 투자 유치·제조업 수주 확대...내부 산업 반발·기술 공유 부담도 존재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 기업 투자를 통해 전략산업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지역 제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103대 보잉 항공기 구매는 미국 항공·우주·엔진 산업의 직접적인 수혜로 이어진다. ‘바이 아메리카 인 서울’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영향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노동·환경·지재권 규범 등에서 미국식 기준이 확산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는 미국 내 중소 제조업체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기술·원전·군사 협력 확대는 미국 내부에서 기술 유출 우려를 낳을 가능성 또한 있다. 투자 유치에 따른 보조금·인프라 부담도 적지 않다.

14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대기중인 수출용 자동차들. [연합뉴스]
14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대기중인 수출용 자동차들. [연합뉴스]

산업별 수혜 분석...조선·반도체·자동차·원전·AI 중심의 구조적 변화

이번 합의의 실질적 경제효과는 산업별로 명확하게 갈린다. 한국 산업은 관세·규제 완화와 전략적 협력이 강화되며 성장 기반을 넓히고, 미국 산업은 대규모 투자 유치와 제조업 수주 확대라는 실익을 챙기는 구조다.

(조선·해양) 한국 조선 “미국 선박 건조” 현실화, 양국 모두 수혜 : 미국이 한국의 1,500억 달러 조선 투자 승인을 환영하면서, “미국 상선 및 함정의 한국 건조 가능성”이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했다. 미국 내 조선업 쇠락으로 인해 선박 공급 능력이 부족한 가운데, 한국 조선소가 직접 미국 시장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조선 기자재·해양플랜트·친환경 선박 분야까지 공급 확대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한국은 ‘불리하지 않은 조건’, 미국은 공급망 안정 확보 : 미국은 한국 반도체 제품·장비에 대한 232조 관세 적용 시 “타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했다. 향후 미국이 타국과 맺는 대규모 반도체 협정보다 유리한 조건이 보장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의 투자를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자동차) 한국 브랜드 미국 시장 확장, 미국 내 생산 유도 계속 : ▲FMVSS 5만 대 면제 상한 폐지로 미국에서 인증 절차 간소화 ▲배출가스 서류 추가 요구 금지로 수출 비용 절감 ▲관세 15% 상한 적용으로 중장기 비용 구조 개선 등의 수혜가 예상된다.

(원전·방산) 한국은 기술력 강화, 미국은 전략적 확장 :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SSN) 건조 승인을 공식화했다는 점은 방산 역사상 전례 없는 진전으로 해석된다. 원전연료·재처리 협력 확대는 한국의 원전 자립도와 기술력 향상에 기여한다.

(AI·디지털) 규제 갈등 완화,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 강화 :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AI·양자·데이터 이전 분야에서 규제 불확실성 감소 효과를 얻는다. 한국 기업도 미국 내 데이터 이전·디지털 플랫폼 사업에서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망사용료·플랫폼 규제 등에서 “차별 금지”가 명시되면서 한국 시장에서 미국 빅테크의 입지는 더 강해진다. 한국의 AI·데이터 기업이 미국 기술 생태계와 더 긴밀히 연결되면 미국 기술표준 영향력은 더욱 확대된다.

이번 합의는 산업별로 분명한 수혜를 만들어내면서도, 양국 정부가 각각 부담해야 할 재정·정치·기술적 리스크도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은 관세·규제 혜택과 전략산업 기회를 확보하지만 외환·방위비 부담이 따르고, 미국은 투자 유치와 제조업 수주를 얻는 대신 산업경쟁 심화와 기술 공유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패키지는 양국 모두에게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적 합의”라는 점에서, 향후 이행 과정에서의 정책 조율과 산업 전략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한 모습.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한 모습.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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