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재외기자.
박춘태 재외기자.

“산은 묵묵히 우리 곁에 서 있지만, 그 침묵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순간, 우리는 자연을 너무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지난 7월 3일, 일본 규슈 남부의 활화산 신모에다케(新燃岳)가 7년 만에 다시 깨어났다. 5,000m 상공까지 치솟은 화산 연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고, 가고시마 공항의 항공편은 줄줄이 멈춰 섰다. 인근 도시 기리시마시에는 화산재가 내려앉았으며, 도카라 열도와 아소산 등 주변 지역에는 연쇄적인 지진과 함께 경계 단계가 격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웠던 것은 대자연의 격렬함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인간의 침착한 대응이었다. 일본 정부는 훈련된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분화 경보를 조정하고, 항공 운항을 통제했으며, 실시간 경고 시스템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위험을 알렸다. 주민들은 당황하지 않고 정해진 대로 움직였고, 학교와 기관은 평소의 훈련에 따라 대피 절차를 점검했다.

이 모든 대응의 이면에는, 자연재해와 함께 살아온 ‘화산의 나라’ 일본의 오랜 경험과 뼈아픈 교훈이 있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위기관리 체계를 뿌리부터 다시 설계했다. 정부의 통합경보시스템뿐 아니라, ‘나를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시민의식이 각 지역 공동체에 깊이 자리 잡았다.

비슷한 조건에 놓인 나라가 있다. 바로 뉴질랜드다. 이 나라도 태평양 ‘불의 고리(Ring of Fire)’ 위에 놓여 있다. 루아페후, 통가리로, 타라나키 같은 활화산부터 2019년 관광객 참사로 기억되는 화이트 아일랜드(Whakaari)까지, 뉴질랜드의 대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을 배우고, 경외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바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준비되어 있으면 두려울 이유도, 후회할 틈도 없다.

뉴질랜드 정부는 ‘GeoNet’이라는 전국 규모의 지진·화산 감시망을 운영하고 있다. 수백 개의 지진계와 GPS 센서, 화산 감시 카메라가 미세한 변화까지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위험이 감지되면 경보 단계가 즉각 상향되고, 스마트폰 알림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주민에게 신속히 전달된다. 전국의 학교, 병원, 공공기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지진·화산 대비 훈련이 실시되며, ‘Drop, Cover and Hold’(엎드리고, 머리를 가리고, 유지한다)는 행동요령은 누구나 몸에 익혀 있다.

이런 점에서 뉴질랜드는 단순히 기술적 대응을 넘어서, ‘공동체 기반의 생존 전략’을 실현한 나라다. 주민들은 민방위 조직(Civil Defence Group)을 스스로 구성하고, 재난 발생 시 대피소 운영, 노약자 보호, 식량 배급까지 지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실행한다. 훈련된 공동체가 위기 시에는 최고의 방패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화산 활동이 활발하지 않지만, 한반도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의 ‘무풍지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경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비 수준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학생들의 지진 행동 요령 교육은 단편적이고, 지역 사회의 민방위 훈련은 해마다 형식화되고 있다. 일부 시설에서는 비상대피 경로조차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위기 대응은 종종 정부와 전문가의 몫으로만 여겨지고, 시민 참여와 지역 주도성은 미흡한 상황이다.

우리가 일본과 뉴질랜드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라, ‘준비된 사회’가 갖는 무형의 힘이다. 어떤 경고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응력,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안전망, 그리고 반복적인 훈련이 만들어내는 신속성과 침착함.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난 대응의 핵심이다.

이번 신모에다케 화산의 거대한 연기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조용한 질문이다.

‘너는 준비되어 있는가?'

그 질문에 당당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회, 언제 닥칠지 모를 자연의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안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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