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에 가면 꼭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바람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 산과 바다 사이를 유영하는 바람은 때론 거칠고, 때론 따뜻하다. 그리고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다. 이름은 김순숙. 지금은 웰링턴 한인회장이지만, 과거엔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다. 바람처럼 끊임없이 달려온 그의 삶은, 이방 땅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지키려는 뜨거운 의지로 빛난다.
어릴 적 그는 늘 운동장에 있었다. 하늘이 낮게 드리운 시골마을, 신발이 벗겨지도록 뛰어놀던 그 시절,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핸드볼공을 쥐었을 때,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 작은 공이 그의 삶 전체를 이끌어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핸드볼에 빠져든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국 대회를 누비며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곧이어 성인 국가대표팀의 주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1977년, 태극마크를 달고 뛰기 시작한 그녀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본선 진출을 확정 지으며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태극 마크는 조국을 대표하는 상징이었고,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태극기를 보는 순간, 온몸이 짜릿하게 떨렸다"고 회상한다.
시간은 흘렀고, 1984년 김 회장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곧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일본 유학을 통해 스포츠 과학과 교육학을 공부하며 시야를 넓혔다. 귀국 후엔 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자신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했다. 하지만 격렬했던 선수 시절의 후유증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수술을 반복하면서, 몸은 조금씩 무너졌다. 결국 그녀는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0년. 또 다른 결정을 내렸다. 남태평양 끝자락, 뉴질랜드 웰링턴으로 떠난 것이다. 언어도 낯설고, 문화도 이질적인 곳. 하지만 그녀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라는 각오로 삶의 무게를 견뎠다.
정착 후 그녀는 한식당을 열었다. 이름난 교수,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과거의 타이틀은 이곳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새벽마다 식자재를 사러 다니고, 음식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손님을 맞이했다. 매일이 고된 하루였지만, 손님들이 “정말 맛있다”고 웃으며 인사할 때마다 피곤은 스르르 녹았다.
그녀는 단지 음식을 파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식당 한 켠엔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와 사진, 영상이 놓여 있었다. 손님들에게 한국의 문화, 기술,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전했다. 한 손님은 그녀의 식당에서 처음 한국을 알게 됐고, 이후 실제로 한국을 방문해 돌아왔다. 그리고는 감동 어린 이야기를 전하며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순간, 김 회장은 생각했다. “이 식당이 작은 공공외교를 할 수 있겠구나.” 음식은 그렇게 사람과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2016년, 김순숙 회장은 웰링턴 한인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그 세월 속에서 그녀는 단순한 대표가 아닌,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었다. 동포들의 일상을 챙기고, 외로운 이들을 보듬으며, 현지 사회와의 가교 역할도 해냈다.
K-컬처 페스티벌, 한가위 잔치, 전통공연, 청소년 프로그램... 그녀가 주도한 행사들은 이제 웰링턴 한인 사회의 연례행사가 되었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특히 차세대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한글학교를 활성화하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어 젊은 세대가 자긍심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다. “이 땅의 아이들이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
김 회장은 지금도 가끔 운동장을 떠올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땀범벅이 되어 뛰던 그 시절. 그리고 경기 시작 전, 태극기를 가슴에 달던 그 짜릿한 순간. 이제 그 태극기는 그녀의 옷에 달려 있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휘날리고 있다.
“가끔은 지금도 내가 국가대표라고 착각해요. 마음속 태극기가 저를 그렇게 만들죠.”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속엔 깊은 신념이 있었다. 고국을 떠난 이 땅에서,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도 수많은 동포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된다.
김순숙 회장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낯선 땅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동포들에게, 그녀는 말없이 손을 내민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충격, 그 모든 고단함 속에서도 사람을 잇고, 마음을 모아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태극기를 품은 인생’이다.
오늘도 웰링턴의 바람은 쉼 없이 불고 있다. 그 바람 속에서 김 회장은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따뜻한 바람과 함께 태극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