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뉴욕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김치와 불고기가 접시에 예술처럼 담긴 걸 보았다. 그 순간의 감동은 조리사로서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낯설지만 아름답고, 익숙하지만 새로웠다. 세계의 중심에서 한국의 음식이 ‘요리’로서 대우받는다는 사실은 뿌듯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내 떠오른 생각은 조금 씁쓸했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한식 세계화’를 이루고 있는 걸까? 조리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식 세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성과도 많다. 김치는 이제 슈퍼푸드 대열에 올랐고, 비빔밥은 웰빙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세계 각국에 한식당이 생겨나고,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한식당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체감하는 건 ‘표준화’의 부재다. 한식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라, 명확한 기준이나 레시피를 정하기가 어렵다. 같은 불고기도 누군가는 간장 베이스로, 또 누군가는 고추장을 섞는다.
그 다양성이 한식의 매력인 동시에, 해외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주는 요인이 된다. 조리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정통’으로 소개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또한 ‘현지화’는 언제나 고민거리다. 김치의 발효 향, 찌개의 깊은 맛, 고추장의 강한 매운맛은 일부 문화권에서는 낯설고 도전적으로 여겨진다. 그걸 무작정 고수할 수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고민은 매 끼니마다 이어지는 숙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리 인프라다. 해외에서 한식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현지에서 직접 요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식을 전공한 셰프들이 해외에 진출하기란 쉽지 않다. 언어, 비자, 문화적 장벽은 물론이고, 아직도 한식은 프렌치나 이탈리안 요리만큼 조리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우선, 한식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조리법은 간결하게,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표준화’해야 한다. 이는 조리사들만의 몫이 아니라, 학계와 정부,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야 할 과제다.
둘째, 한식의 ‘현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한식은 살아있는 문화다. 고정된 틀에 가둘 게 아니라, 다양한 식문화와 어우러질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비건 한식, 글루텐 프리를 고려한 메뉴 개발 등은 한식의 저변을 넓히는 실용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셋째, 전문 인력 양성과 해외 진출 지원이 절실하다. 조리사들이 국제 무대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교육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한식을 단순히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공감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를 통해 한식이 가진 스토리와 감성을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다. 조리사의 손끝에서 태어난 음식이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수 천만 명에게 감동을 주는 시대다.
한식은 이미 세계인의 식탁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식탁 위에서 한식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조리사로서 나의 사명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음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따뜻하게 스며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