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버섯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공존의 가치를 탐구하는 이승연 작가의 ‘보이지 않는 숲'(Floresta Invisível) 전시가 지난 8일 상파울루 봉헤찌로 소재 오스왈드 지 안드라지 문화 복합센터(Complexo Cultural Oswald de Andrade)에서 성황리에 개막했다.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원장 김철홍)이 주최하고 셀레티보 아트/트랜지팟 아트(대표 김현아)가 큐레이팅을 맡은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약 두 달간 열린다.
이 작가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숲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버섯, 균사체들의 연결이 없다면 순환할 수 없다”며 “전시의 시작점인 ‘버섯’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연결과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버섯은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류'”라며 “땅속의 균사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숲 전체를 연결하고 순환하게 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술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며, 사람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선물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버섯 균사체가 상징하는 ‘연결’과 ‘순환’의 메시지를 시각 예술로 풀어냈다.
특히 브라질 현지에서 받은 영감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의 거대한 나무들, 특히 땅 위로 뿌리가 솟아오른 고무나무 등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뿌리가 땅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도 솟구칠 것 같다는 상상, 나무 하나가 그 자체로 숲이자 땅, 하늘이 되는 ‘모든 것이 얽힌’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전시 방식에도 반영됐다. 작품은 벽에 평평하게 걸리는 대신, 거대한 천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듯” 기울어지게 설치됐다.
이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봤을 때, 거대한 뿌리가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혹은 반대로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세상이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뒤집어진 모습일 수 있다는 ‘다른 시각’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의 역할을 “몰랐던 세상을 보게 하는 것, 즉 ‘사고의 전환’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어, 숲이 뒤집어져 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으며, 그렇기에 서로 더 연결되고 의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의 시작점은 2025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 ‘어메이징 북셸프’ 부문에 선정된 이 작가의 일러스트북 ‘황금 곰팡이의 숲'(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작)이다.
이 작가는 “나는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시각 예술가이며, 그림책은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여러 매체 중 하나”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김현아 대표가 책의 출간을 계기로, 책의 디지털화된 소스를 활용한 미디어월 애니메이션 상영(아베니다 파울리스타), 원화 설치 작업(전시)까지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확장했다”며 “한 가지 이야기가 책, 영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전시 외에도 오스왈드 지 안드라지 문화복합센터, 주브라질한국문화원 등에서 책을 활용한 낭독회와 판화 워크숍도 진행하며 현지 관객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 작가는 현지 스태프들과의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일정이 늦어지는 등 문화적 차이도 있었지만, 단순히 ‘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프로젝트처럼 적극적으로 ‘참견’하고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브라질 사람들이 보여준 ‘친근한 스킨십과 환대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줬다”며 “이 나라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이스함’인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브라질에 K-팝 등 대중문화 외에 한국의 순수 미술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한국의 순수 미술 작가가 쓴 책이 포르투갈어로 현지에서 정식 출간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강조한 이 작가는 “이번을 계기로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서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을 초청하는 등, K-아트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업들이 예술을 ‘사치품’이 아닌 ‘생활의 일부’이자 ‘작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힘으로 보고, 브라질 기업들도 세금 인센티브 등을 활용해 예술 후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