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캄보디아 ODA 사업을 두고 “부패한 정권에 돈을 퍼준다”는 비판이 들려온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단편적 재정 논리로만 이해될 수 없다. ODA는 단순한 기부나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미래를 설계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보하며, 기업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장기적 전략이다.
동남아 지정학적 구도에서 캄보디아는 메콩 경제권의 관문이자, 중국과 ASEAN을 잇는 전략적 허브다. 도로, 항만, 교량, 의료 등 인프라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원조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진출 경로를 확보하는 외교적 포석이다.
과거 베트남 ODA 역시 ‘퍼주기’ 논란을 겪었다. 1990년대, 한국이 베트남에 지원을 늘리며 일부에서는 ‘퍼주기’라 비판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최대 해외 생산기지이자 1천여 개 기업이 자리한 전략적 시장으로 성장했다. ODA는 단순한 금전적 거래가 아니라, 자리 잡기 전략이자 신뢰 구축의 과정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그 과정에서 차관을 지원받아 오늘의 경제 번영을 세우는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원조와 인력 교류는 단순한 금전적 거래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투자였다. 오늘날 캄보디아에 대한 ODA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감정을 넘어, 글로벌 선진국가의 안목으로
한국 ODA는 단순히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부패보다 더 위험한 ‘빈 공간’을 막는 전략이다. 만약 우리가 손을 떼면, 그 자리는 반드시 다른 세력이 채운다. 이미 캄보디아는 중국 자본과 정치 영향력이 깊이 스며든 상태다. ODA 예산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지만, 결코 국민에게 무익하지 않다. 한국 기업의 해외 수주, 기술 진출, 금융 협력, 인재 교류를 촉진하는 토양이 된다. KOICA 파견 청년 전문가, 기술 자문가, 의료진, 엔지니어들은 현지에서 한국형 개발 모델을 전파하며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다.
우리는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단순한 ‘퍼주기’ 논쟁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장기적 외교와 전략적 미래를 판단해야 한다. ODA는 단기적 손실이 아니라, 국가의 신뢰와 영향력을 쌓는 미래 투자다. 손을 내밀 때, 한국은 동남아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고, 영향력의 교두보를 만들어 나간다. 그 기술과 신뢰를 잃는 순간, 우리의 외교와 경제는 점점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될 것이다.
비단 캄보디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선진국으로서 입지를 굳히려면, 성숙한 자세와 균형 잡힌 외교가 필요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