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 재외기자
박정연 재외기자

초국가범죄 대응의 새로운 틀, 공동 전담반 출범

한국과 캄보디아 경찰이 손을 맞잡고 ‘코리아 전담반’을 공식 출범시켰다. 지난 몇 달간 캄보디아에서 한국인들이 온라인 사기, 감금,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사건이 잇따르며, 한인 사회는 극도의 불안과 분노 속에 있었다. 특히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스캠 범죄는 단순한 사기 수준을 넘어, 범죄 조직에 의한 협박·폭행·감금으로까지 이어지며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번졌다.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드디어 양국 경찰이 ‘24시간 합동 대응 체계’를 가동한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이번 전담반 설치는 단순한 외교적 성과가 아니다. 한국 경찰과 캄보디아 경찰이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신고 접수부터 피해자 구조, 수사, 피의자 송환까지 모든 절차를 함께 수행한다는 점에서 “현장 공조”의 첫 모델이 된다.

특히 한국 경찰관 최대 7명, 캄보디아 경찰 12명이 투입되는 이 전담반은 기존의 코리안 데스크(필리핀 3명, 태국 2명)보다 훨씬 확대된 규모다. 이는 캄보디아에서 발생하는 한국인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양국 모두가 직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간 상호 불신보다 신뢰, 비난보다 협력의 시선이 필요하다"

사실상 이번 ‘코리아 전담반’ 출범은 우리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코리안 데스크 구상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 수사 인력과 장비, 대응 체계 모두 대폭 강화됐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과 캄보디아 경찰이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근무하며 직접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현장형 외교안보 협력’의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그간의 대응은 한계가 뚜렷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한국 외교공관을 통해 신고하더라도, 현지 경찰의 수사 협조가 늦거나 정보 공유가 부실해 실질적인 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소재 파악조차 지연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코리아 전담반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사건 발생 즉시 양국 경찰이 현장을 함께 확인하고, 디지털 포렌식센터를 통해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는 등 초기 대응 속도와 정확도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국내 여론에서는 캄보디아 정부의 미온적 태도나 수사 비협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비판적 시선을 잠시 거두고, 양국이 새롭게 구축한 신뢰의 토대 위에서 협력의 성과를 지켜볼 때다.

외교와 치안 협력은 상호 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해야 지속 가능하다. 캄보디아 정부가 비협조적이라는 인식이나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결국 양국 외교관계와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지 당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협력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이번 MOU 체결은 한국 경찰이 ‘피해자 보호 중심’의 국제 공조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단순히 피의자 송환이나 범죄자 색출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안전 확보와 조기 구출을 최우선으로 삼는 구조가 마련됐다.

실제로 최근 5년간 동남아 각국에서 온라인 스캠 연루나 감금 피해를 신고한 한국인은 760명 이상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캄보디아에서 발생했다. 2023년 이후 캄보디아 피해 신고가 폭증한 이유는 단지 범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현지에서 대응이 늦고 보호 체계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중국계 온라인 스캠 범죄 조직원들의 아지트로 알려진 프린스 그룹 산하 건물 단지 [박정연 재외기자]
[참고 사진] 중국계 온라인 스캠 범죄 조직원들의 아지트로 알려진 프린스 그룹 산하 건물 단지.  [박정연 재외기자]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풍선효과’가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인접국으로 번지는 조짐도 보인다. 범죄 조직은 언제나 감시가 약한 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기에 이번 코리아 전담반은 캄보디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남아 전역을 아우르는 초국경 범죄 대응 모델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경찰청이 밝힌 대로, 태국·라오스·베트남 등 주변국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예방–수사–송환–피해 회복”이 가능한 완결형 국제공조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 전담반을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내지 말고, 지속 가능한 현장 대응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범죄 수사 장비와 디지털 포렌식 기술, 그리고 전문 수사관의 상주 근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예산과 인력의 꾸준한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외교부·법무부·경찰청·대사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해외 한인 보호 컨트롤타워’를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피해 신고부터 구조, 귀국 지원, 심리치료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통합 대응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캄보디아 현지의 한인 사회는 이미 수년간 범죄의 한가운데서 고통받아 왔다. 이번 전담반 출범이 단지 “늦게나마 도착한 구원”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캄보디아에서 시작된 이 협력의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스캠과 감금, 인신매매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국제공조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한 번의 협약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책임지는 정부의 의지와 실행력이다.

이번 코리아 전담반 출범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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