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린스은행 전경 [박정연 재외기자]
캄보디아 프린스은행 전경 [박정연 재외기자]

한국 금융권을 뒤흔든 ‘캄보디아 프린스그룹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인신매매·감금·온라인 사기 등 중범죄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 자금이 국내 은행의 캄보디아 현지법인을 통해 대규모로 유통된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한국 경찰이 관련자 11명을 조사하고 2명을 입건하며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가 불과 지난해 ‘해외 점포 현지화 우수국’으로 꼽혔던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의 동남아 진출 전략 전반에 대한 신뢰도도 흔들리는 양상이다.

프린스그룹 관련 사건 28건…한국 연락사무소 관계자 2명 입건

서울경찰청은 11월 17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프린스그룹 및 후이원 등과 관련해 추가로 4건을 접수해 현재 총 28건을 수사 중”이라며 “프린스그룹 한국 연락사무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책임자와 직원 등 2명을 입건한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연락사무소 설립 목적, 국내 활동 내역, 범죄수익 은닉·사기·유사수신행위 연루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후이원 그룹과 관련해서도 서울 대림동 소재 한국 연락사무소 사업자와 직원들을 불러 조사했다.

‘범죄 단지’ 운영 의혹…캄보디아·중국서 잇따라 드러난 전력

프린스그룹은 중국계 사업가 천즈(38)가 설립한 기업으로, 부동산·금융 등 다수의 사업을 확대하며 캄보디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놈펜·시하누크빌 일대에 ‘범죄 단지’를 운영하며 조직적 인신매매, 감금, 온라인 사기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베트남 국경 인근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내 불법 도박·성매매 조직과 연결된 자금 흐름도 다수 포착됐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범죄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 그룹 천즈 회장. [위키페디아]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범죄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 그룹 천즈 회장. [위키페디아]

후이원 그룹 역시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로 통하는 결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국제 해킹조직의 사이버 사기·랜섬웨어 수익을 세탁하는 핵심 허브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내 금융권과 1970억 거래…예금 900억 넘게 현지에 잔존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전북·우리·신한은행   등 국내 5개 은행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 약 1970억 원 규모의 거래를 진행했다. 이 중 900억 원이 넘는 예금이 여전히 현지 법인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10월 프린스그룹을 국제 범죄 조직으로 지정하면서, 국내 금융사들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위험에 노출됐다. 은행들은 서둘러 해당 예금을 동결했지만 사후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권 ‘동남아 전략’ 도마 위로

이번 사태는 한국 금융권의 동남아 진출 전략 전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그동안 ‘성공적인 현지화 모델’로 평가돼 왔지만, 대규모 고객 기반 확대 경쟁 속에서 자금세탁방지(AML)·고객알기제도(KYC) 관리가 허술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전북은행은 프린스그룹과의 대규모 예금 거래를 기반으로 고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금융권 전반의 거버넌스와 리스크 관리 체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 전문가들은 “단기 실적에 치우친 공격적인 영업이 현지 범죄조직 자금과 맞닿으면서 취약점이 노출됐다”며 “동남아 시장의 정치·사회적 리스크를 정교하게 반영한 전략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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