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들이 동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 안정적인 내수시장, 한국 기업들의 잇단 투자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금융권이 새로운 성장 기회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투자 허브’로 부상
동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폴란드다. 인구 약 4천만 명의 내수시장과 유럽 중심부라는 지리적 이점에 더해, 인접국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과 연계된 금융·투자 수요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한국 기업 간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90년대 초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가 진출하며 현지 생산·판매 기반을 닦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기아차 등도 폴란드 내 사업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산업 협력 경험이 금융시장 진출에도 기반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바르샤바와 브로츠와프 등 주요 도시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형 한국 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특히 방산·배터리·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와 고용이 늘면서, 이를 뒷받침할 금융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관광 수요도 우호적 요인이다. 저렴한 물가와 유럽 주요 도시와의 접근성, 프라하 직항 노선 신설 등으로 여행객 유입이 확대되면서, 개인 금융과 서비스 영역의 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銀·하나銀, 연이어 폴란드 개점
이런 분위기 속에 국내 은행들의 행보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바르샤바에 지점을 열어 동유럽 전역의 거점 역할을 맡겼다. 이번 개점으로 런던,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세 번째 유럽 거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하나은행도 지난 9월 브로츠와프에 지점을 개설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이 직접 개점식에 참석하며 현지 시장 공략에 힘을 실었다. 하나은행은 개점 직전 폴란드 최대 상업은행인 PKO뱅크와 전략적 협약(MOU)을 체결해 무역금융, 환거래, IB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기반을 다졌다.
민간은행뿐 아니라 국책 금융기관도 잇따라 합류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6월 바르샤바에 사무소를 열고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지원에 나섰다. 신용보증기금은 이달 초 폴란드 개발은행(BGK)과 협약을 맺고, 기업 성장 지원과 보증제도 발전을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K-금융, 이제는 동유럽에서도 영향력 확대할 것”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과 은행, 금융공기업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이른바 ‘폴란드발 K-클러스터’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방산·배터리·자동차·전자 산업에 이어 금융 인프라까지 더해지며,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현지에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투자,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수요, 관광 확대라는 3대 요인이 금융시장의 성장성을 높이고 있다”며 “동유럽에서의 경험이 장기적으로는 유럽 전체 금융 네트워크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