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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종교적 담론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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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종교적 담론 갱신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10.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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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이성과 꾸란 해석

일부 무슬림들은 이성으로 알라(allah)를 알고 이성이 종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무슬림이라고 자처한 무라드 와흐바 교수는 13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슬람 세계는 이성적 성장이 느린 시기(takhalluf)였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타칼루프는 후진, 후퇴라고 번역되지만 이슬람철학자들은 무슬림이 믿은 것을 이해하는데 이성이 사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무라드 와흐바는 종교적 텍스트에는 드러난 의미(자히르)와 숨은 의미(바띤)가 있는데 바띤은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라드 와흐바는 이슬람 세계가 13세기 이후 타칼루프 속에 살아왔다고 하면서 이성의 작동을 막아왔다고 주장한다. 13세기에 이븐 타이미야가 자히르의 의미를 진짜 의미(마으나 하끼끼)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히르를 넘어선다는 것은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슬림 형제단은 이성을 사용해 종교적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사실 순니파의 꾸란 해석에서는 이성을 사용하기 전에 전수에 의한 해석(공일주, ‘꾸란 해석’ 참조)을 우선하는 것을 해석의 원리로 삼아왔다. 결국 무슬림들이 자히르에 머물기 시작하면 점차 꾸란의 문맥과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해당 단어만을 해석하는 극도의 문자주의적 해석(타프시르 하르피)을 하게 된다. 여기서 “하르피”라는 말은 letterism(극도의 문자주의)을 가리킨다.

문자주의적 해석의 위험성

꾸란을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책을 보면 꾸란에 대한 문자주의적인 해석(하르피)이 보인다. 이것은 곧 종교적 텍스트의 본래 의도를 전하지 못한 것이고 이런 번역이 지난 20여년간 국내에서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그들이 꾸란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인가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꾸란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전에 반드시 꾸란해석의 원리를 먼저 숙지하고 있었어야 했다. 꾸란과 하디스의 종교적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본래의 의도를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텍스트의 해석은 인간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지 신의 의도를 반드시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법학파들, 이슬람 운동(타이야르), 사상들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고 그 텍스트의 의미와 의도와 목적에 대해 다양한 해석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 텍스트에 대한 하르피 해석은 위험한 것이다. 

종교적 텍스트에 대한 하르피 해석과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 오늘과 이슬람 세계에서 보여주듯이- 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았다. 

종교적 메시지가 특정 무슬림 집단을 위해 해석되면 IS의 만행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흔히 ‘칼의 구절’로 알려진 꾸란 9장 5절은 극도의 문자주의적으로 읽는 자는 그 구절에 내려온 역사적인 배경이나 문맥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구절이 꾸란에 나오는 모든 ‘평화’의 구절들을 무효화시킨다고 주장한다. IS는 '알라에 대한 믿음이 없고 이슬람을 안 믿는 자'는 전쟁터의 적이 아닌데도 그들을 죽이는 것은 무방하다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래서 IS는 비무슬림은 물론 신앙이 없다고 판단된 무슬림들도 살해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이성과 종교적 갱신을 막아

아랍 이슬람 세계의 타칼루프(이성의 작동을 막아버림)는 근본주의를 가져오게 했다. 아랍 근본주의는 종교적 텍스트에서 이성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막아버린다. 이런 근본주의는 아랍의 대학가에도 퍼져 있어서 동료 무슬림들의 사상을 비판하고 심지어 동료 무슬림을 카피르(알라를 믿지 않는 자)로 몰아서 직장에서 쫓아내고, 또한 카피르는 법원의 판결이 나면 무슬림 부인과 이혼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타즈디드(Tajdid, Renewal, 갱신)를 부르짖었으나 지난 500년간 아랍에서는 종교적 타즈디드는 없었다고 한다. 무함마드 압두흐가 이슬람의 타즈디드를 부르짖었으나 근본주의자들은 해석과 유산에서 극도의 문자주의적(하르피)인 것에 집착했다. 결국 종교적 개혁과 계몽주의(탄위르)는 완성되지 못했다. 

아랍 세계에서 근본주의(우쑬리야)의 반대말은 세속주의(알마니야)이다. 무라드 와흐바는 지금의 아랍 이슬람 세계가 필요한 것은 세속주의, 계몽주의, 아랍적인 루쉬드 사상이라고 했다. 

무슬림 학자들에게 시대가 흐르면서 타즈디드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거기에는 종교적 사상이 굳어져 동결되고 이즈티하드(법학자의 법적 판단)가 굳어져 버리고 이런 종교적 사상이 문화적 후퇴와 함께 했다.  

이성과 종교적 담론 갱신이 시대적 과제

2021년 9월 무함마드 우스만 알코쉬트는 ‘인간의 재건과 이집트 이성(알아끌 알미쓰리)의 발달’이란 주제에 대해 ‘비평적 이성(아끌 나끄디)’을 가진 새로운 청년 세대를 세워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을 재건하는 일은 이성을 재건하는 일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인간 이성은 인간의 행동과 신앙 뒤에 잠재되어 인간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나라가 발전하려면 이성을 재건(다시 세우고)하고 발달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그런데 이집트인의 이성의 동인(움직이게 하는 것)은 종교적 이성(아끌 디니)이라고 했다. 이집트인들은 7천년 동안 종교적 이성에 지배돼 왔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적 이성의 발달은 종교적 텍스트(꾸란)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인간의 이성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서 종교(꾸란)와 종교적 담론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종교적 담론을 발전시키자는 것은 꾸란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아니고 종교에 대한 사고에서 인간의 사고 방식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적 담론은 종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과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종교적 담론은 인간의 담론이고 신적인 것은 꾸란이라고 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은 파괴로 이끄는 방식으로 꾸란을 이해한다고 했다. 보통의 무슬림이 믿는 꾸란과 테러리스트가 믿는 꾸란은 같은데 문제는 그 종교에 대해 서로 이해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그리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알마쓰리 알야움, 2021/9/6일자 신문). 결국 종교적 담론의 타즈디드(갱신)는 사고하는 방식에서 발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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