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S와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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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IS와 탈레반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08.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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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아프가니스탄의 IS ‘쿠라산 주(Khurasan Province)’

8월 26일 카불 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서 IS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IS와 탈레반 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아보자.

IS와 탈레반은 ‘지하드를 하는 살라피(salafi Jihadi)’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하드에 대해서는 지난번 필자의 글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의 이슬람>을 참조하길 바란다. 살라피는 여러 특징들이 있지만(공일주, 『이슬람과 IS』, 123쪽 참조) 그 중 한 가지는 텍스트를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반기독교적이다. 지하드를 하는 살라피는 전투 현장에 참여하고 이슬람에 대항하는 모든 기관과 사람을 대해 지하드를 명령하고 테러를 저지른다. 

IS와 탈레반은 자신들이 진짜 이슬람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 무슬림과 다르게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강경하고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 둘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를 대적해 왔다. 

IS와 탈레반 사이에서 차이가 나는 점은 IS는 국경을 벗어나지만 탈레반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해당 지역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IS는 ‘쿠라산 주(Khurasan Province)’란 이름으로 아직도 그 지역에서 건재하다. 쿠라산 주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의 IS는 일단의 무장세력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에서 망명한 무슬림들과 아프간의 탈레반에서 나온 무슬림들로 구성돼 있다. IS는 쿠라산 지역에 있는 국가들, 그리고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모든 무장 세력과 싸울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와 시리아에 활동했던 IS는 쇠락해갔지만 쿠라산 주의 IS는 탈레반을 계속 위협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과 격돌할 때 주민들의 안전을 개의치 않고 포탄과 총탄을 퍼부었는데 그들에게는 80년대 소비에트 점령시부터 모아둔 무기들이 있었고 최근에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병력이 인계해준 장비와 무기를 인수받았다.

탈레반은 1970년 초에 시작돼 1994년 소비에트 철수 후 북부 파키스탄에서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2001년에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탈레반이 세운 국가를 국가로 인정해줬다. 아크타르 무함마드 만쑤르 사망 이후 탈레반 운동의 리더십을 발휘한 물라 아쿤자다는 강경파로 알려진다. 그동안 탈레반은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억압했다.

1차 탈레반 정권 때는 여성은 임신, 자녀 양육, 집안일로 그 역할을 제한했다. 그 당시 여성은 히잡이나 니깝을 써야 했고 남자는 수염을 길러야 했다. TV에서 오락 프로그램은 금지됐고 음악을 듣는 것과 영화 상영이 금지됐다. 그 당시 탈레반은 10세가 된 여자는 학교 가는 것이 금지됐다. 

1차 탈레반 정권 때 탈레반은 현대 교육을 강하게 거부했고 아프간 국민들의 반대가 심하자 학교를 열었으나 물리, 화학, 자연과학 과목은 아주 적고 그 대신 이슬람 법과 하디스 등 종교과목이 부쩍 늘었었다. 

중동의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번에는 1차 탈레반 정권 때와는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나 아직 예단하기에 이르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율법

중동의 대부분 아랍 국가들은 이슬람법이 주로 개인의 지위와 관련되거나 가족법과 관련될 경우 이슬람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100년간 다음 3가지 요인을 근거로 법체계가 세워지고 발전했다. 

(1) 전통적인 지역 관습법
(2) 이슬람 율법(샤리아)
(3) 국가가 제정한 법

아프가니스탄은 위 3가지가 결합된 법체계를 갖는다. 그런데 이들 3개의 법 출처 간 불명확한 관계와 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 없어서 아직도 문제가 많다. 성문화된 법이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규제하는 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반 시민과 마을 사람들은 해당 부족의 관습법과 이슬람 율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기존의 관습법을 통째로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도 이런 관행을 바꾸려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전통, 과거의 실패를 고려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어떤 새로운 시스템을 강요할 때 성공할 확률이 적었다. 주민들로부터 대중적인 태도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법과 인권의 기준이 적용되고 이행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이런 법적 시스템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법과 국제법을 집행하고 싶어도 국내 치안 부족과 불안한 정국이 그런 일을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행정체계가 불완전하고 전쟁 중에 보관 문서들이 사라진 것도 큰 문제가 됐다. 더구나 중앙 정치 권력이 완전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심지어 판사가 법을 잘 알더라도 법 적용을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개인 간 분쟁이 생기면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따를지 관습법을 따를지를 먼저 합의해야 한다. 많은 경우 관습법은 이슬람 율법과 상치된다. 관습법에 의한 여성의 지위는 이슬람 율법에서의 여성의 지위보다 더 나쁘다. 

역사적으로 관습법과 이슬람 율법 간의 공존과 경쟁이 항상 있었다. 하나피 법학파의 이슬람 율법을 개인 관계, 상속법에서 취했고 토지 보유 조건에 대해서는 관습법에서 취했다. 형법에서는 관습법과 이슬람 율법이 둘 다 재판에 영향을 줬다. 1980년 이후 헌법을 제외하고 모든 법은 이슬람 율법이 우선한다고 알려져서 아프간 사람들은 국가의 법은 이슬람 율법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슬람 율법과 어떤 측면의 관습법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기대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남긴 것: 무슬림은 누구인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카불 공항에서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보여준 대혼란과 미군이 사용한 무기들과 군사 장비들이 모두 탈레반 손으로 들어간 것을 두고 아랍 정치평론가들은 우려를 금치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간 후 중국과 파키스탄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두 달 전 탈레반 대표들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들이 중국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중국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탈레반 책임자가 한 주 전 “아프가니스탄은 중국과 터키 두 친구를 갖고 있다”고 했다. 

터키와 이란은 더 많은 아프간 난민이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지만 아프간에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 

수년간 이란은 탈레반에게 훈련과 장비를 지원해줬다. 그러나 1차 탈레반 통치기간(1996~2001)에 탈레반은 이란과 시아파에 적대적이었다. 미군이 2001년과 2002년 알카에다를 공격했을 때 알카에다가 파키스탄에 인접한 산악지대로 피했다. 수십만명의 아프간의 시아파들이 이란으로 도망갔다. 이들 중 수천명의 청년들이 파띠미인이나 자이나비인이란 이름으로 혁명수비대의 지휘 아래 시리아에서 용병으로 싸웠다.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대부분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Hazara)는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에 편한 날이 없었다. 

8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협력 기구(OIC) 특별 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를 지원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했다.

아랍 무슬림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보면서 탈레반의 ‘이슬람’에 대해, 깊은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아랍 무슬림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3분의 1이 피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고 또 이렇게 도망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모두 ‘무슬림들’이고 탈레반도 ‘무슬림들’인데 아프간의 무슬림들이 탈레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것이다. 결국 세계인들이 ‘이슬람’과 무슬림을 어떻게 생각할지 아랍 무슬림들은 매우 당황스러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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