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동의 슈우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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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동의 슈우비야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06.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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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우리는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미국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언론에서 듣고 있다. 중동에서도 아랍인과 비아랍인 간의 갈등은 오래 전부터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필자가 중동의 현안을 중동의 민족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의 관점에서 주로 글을 쓰려고 하지만, 때로는 아랍인 또는 무슬림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재외동포들이 현지인의 입장을 그대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에서다)

슈우비야는 8세기 말의 페르시아인의 사회 및 문화적 운동

아랍인들은 무함마드, 쌀리흐, 후드 등의 예언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비아랍인에 대한 인종적 특권을 고집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8세기 말(우마위야조 말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새로운 운동(물결)이 시작돼 압바시야조 초기에 자리를 잡은 알슈우비야 운동이 있다.
 
행정적인 면에서 보면 압바시야조(750-1258)에서는 페르시아인과 터키인 그리고 다른 인종들이 아랍국가의 통치 계층에 포함돼 있었다. 아랍인이 아닌 다른 민족의 문화적 작품들이 번역됐고 이것이 아랍 이슬람 문화의 융성을 이끌어냈으며 아랍 무슬림들은 이때를 황금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페르시아민족의 슈우비야 운동은 아랍화(Arabization: 아랍어를 점차적으로 채택하고 아랍문화와 병합하는 것)를 반대하는 운동에서 출발했으나, 이란인의 입장에서 보면 페르시아인에 대한 아랍인의 차별에 반대해 페르시아인이 벌인 저항 운동이라고 한다.
 
슈우비야는 처음에는 페르시아인들이 문화적인 저항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역사를 거치면서 아랍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 이 용어를 사용했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운동은 페르시아(이란)인에 의한 슈우비야 운동이었다. 꾸란 주석가 알꾸르뚜비는 “슈우비야는 아랍인을 미워하고 비아랍인을 더 좋아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알자마크샤리는 “아랍인의 중요성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슈우비야는 평등에서 차별로

슈우비야는 아랍어 “슈웁(Shu‘ūb; 민족, 국민)”이란 말에서 연유하는 데 슈우비야는 “어느 국민과 다른 국민 사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평등‘이란 뜻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사상에는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낫거나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타끄와(비난받을 악행으로부터 인간의 혼을 보호하고 금지된 것을 버리는 것; 타끄와 개념은 『꾸란 해석』, 202쪽 참조) 뿐이라고 했다. 둘을 비교해 어느 것이 더 낫다는 것은 국민이나 집단 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의 차이 뿐이라는 것이다.

슈우비야는 이슬람에 들어간 비아랍인 사이에 평등하다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우마위야 조(661-750년) 때에는 아랍인들이 종교와 문화와 국가 통치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비아랍인이 이슬람에 들어오면서 - 아랍인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 비아랍인들이 아랍인들을 경시하기 시작했다.   

현대판 슈우비야는 아랍인을 차별하는 것인가?

오늘날 아랍보다는 이란(페르시아)의 영광을 바라는 레바논의 히즈불라, 무슬림 형제단의 하마스 운동, 예멘의 후시 민병대(밀리시야)가 현대판 슈우비야 운동이라고 말한다. 

중동 지역에서 현재 무슬림 형제단 집단과 정치 이슬람 집단들이 모두 페르시아나 터키의 어젠다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중동의 민족주의의 부상, 정치적 이슬람 그리고 소수 민족들이 슈우비야를 소생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근래의 중동 지역의 역사, 문화. 사회, 종교, 정치적인 요인들이 반 아랍 정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중동의 비아랍인들이 아랍인과 갈등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종과 정체성과 언어가 신슈우비야(Neo-Shu‘ūbiyyah)를 만들어냈다. 이라크의 아랍인들 중 일부의 시아 무슬림(이란의 지원을 받음), 예멘의 후시(이란의 지원을 받음), 시리아의 알라위(아사드 대통령 추종자들), 시리아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모두 ‘신 슈우비윤’(슈우비윤 주두드; 신 슈우비야를 따르는 자들)이다.  

인종과 결부된 민족주의의 부상

우마위야조(661-750년) 때 아랍인들은 종족의 우월감(tafawwuq al-Jins)을 갖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비아랍인 특히 페르시아인과는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국가 간의 갈등에는 민족주의가 포함돼 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아랍인과 터키인과 페르시아인들이 이런 시류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일부 아랍인들이 이슬람 분파주의나 칼리프제 복원이란 이름으로 다른 아랍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해 왔다. 현재는 이란의 슈우비야뿐만 아니라 터키의 슈우비야가 아랍인들을 차별한다고 알자지라의 기고가 무함마드 알살리미는 주장한다.

앞서 말한대로 우마위야 조까지 아랍인 주도의 통치 시기에는 아랍인들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아랍인과 비아랍인 사이에 평등이 깨져 있었다. 그러다가 역사를 거치면서 슈우비야라는 말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비아랍인들이 아랍인에 대해 특권을 갖는 것으로 여겨서 자신들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페르시아의 사상가들은 그들의 문학과 시와 해석과 사상이 아랍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페르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아랍인의 중요성은 작아지고 심지어 아랍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슈우비야가 아랍인을 경멸하는 물결이라고 아랍 무슬림들은 말한다.

신 슈우비야 운동은 언어와 문화의 침탈에서 정체성의 문제로

역사적으로 슈우비야는 이슬람력 1세기 후반부에 시작돼 우마위야조 때 계속되고 압바시야조  때 비아랍 무슬림들이 통치권에 합류하면서 슈우비야가 강화되고 확대됐다.
 
그런데 2003년 이라크의 시아 무슬림들이 이라크 아랍인에게서 아랍인의 정체성을  근절시키는 시도를 한 것이 ‘신 슈우비윤’의 가장 큰 음모였다고 아랍인들은 말한다.
 
아랍 무슬림들은 현재의 정치적 이슬람이 아랍인들을 경멸하고 터키인에게 영광을 돌리는 신슈우비야 운동을 리드하고 있다고 한다. 무슬림 형제단의 신 슈우비야 운동은 터키를 아랍인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무슬림 형제단들이 그들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인종과 민족을 버리고 특정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축소하는 경향을 추구했다. 

슈우비야 운동이 아직도 지속되는 이유?

아랍인이건 비아랍인이건 중동의 이슬람 민족 사이에는 상호간의 문화적인 교류가 있어왔는데 왜 슈우비야가 아직까지 활성화된 운동으로 지속되고 있을까?

첫째는 슈우비야가 혁명과 운동권과 자주 결부됐다.

둘째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사상적 및 문화적 활동에 슈우비야 요소가 많다. 이슬람에서 문화와 학술에 뛰어난 사람들 중에 비아랍인이 있었다.

셋째는 지배층의 정치적 부조리는 금전적인 부패와 재산의 잘못된 분배를 낳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 통치자 층과 일반 국민 사이에 불화가 조성돼 그 결과로 혁명이나 새로운 정치 운동이 생겨났다.

넷째는 현대의 슈우비야에서는 아랍 내부의 슈우비야가 더 위험하다. 그 예로 이라크와 레바논과 예멘의 아랍인들이 이란의 시아 무슬림을 돕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이슬람의 물결이 슈우비야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
 
다섯째는 정치적 이슬람 운동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비아랍인이자 소수민족인 페르시아. 쿠르드, 투르크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랍 무슬림들에게는 반이란과 반터키의 정서가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다.

따라서 중동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은 이란과 터키 그리고 아랍 간의 이런 슈우비야 물결을 잘 파악하고 그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태도를 갖는 것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순니와 시아 이슬람 간의 종교적 갈등, 이란인과 아랍인 간의 인종적 반목, 아랍과 이란, 터키 간의 역내 패권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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