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의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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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의 이슬람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08.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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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의 출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분석은 주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되짚어보거나 앞으로 가능할 것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글들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아프가니스탄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환경을 갖고 있다.  1973년 아프가니스탄 왕가 사람에 의해 왕정이 바뀌었는데, 무함마드 자히르 샤가 전복되고 무함마드 다우드 칸이 쟁취했다. 다우드 칸은 그 당시 가장 강력하고 가까운 소비에트와 협력해 개혁을 단행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아프가니스탄이 소비에트 연합 국가의 하나로 합류하기를 원했다. 1978년 4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유혈 쿠데타로 다우드 칸 정권이 무너졌다. 1년도 못돼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의 반소비에트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소비에트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다. 

그 당시는 냉전 시대라서 세계 여러 국가들은 소비에트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것을 반대하는 일에 참여했다. 이 때 탈레반 운동이 태동됐고 그들은 이슬람 샤리아를 모토로 내세웠다. 그 당시에는 부분적으로는 성공했고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지역들이 탈레반의 통치를 받아들였으나, 2021년 지금은 모든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탈레반 수하에 들어갔다.

탈레반의 정체성

우선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이슬람에서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인종의 모자이크 그리고 이슬람의 모자이크라고 불린다.
 
탈레반은 파쉬토어로 학생들(아랍어로는 딸라바)이란 뜻으로, 탈레반은 파키스탄에서 원래 데오반디(인도–파키스탄의 개혁주의 운동) 마드라사와 와하비(사우디의 와하비 운동) 마드라사의 종교적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마드라사는 아랍어에서 온 단어인데 학교라는 뜻이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이 단어가 종교교육만을 제공하는 초등학교나 중등학교를 가리킨다.

데오반디의 분파적 전투력에 기반을 둔 지하드 이념은 데오반디에 속한 군사조직과 연계돼 이슬람 울라마(학자) 협회가 강력하게 추진했다. 1990년대 이들 조직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카쉬미르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무함마드 오마르에 의해 창설됐고 탈레반운동의 창립 사령관들은 종교적인 학생 집단을 이끄는 물라(mullah:이슬람 신학과 법을 공부한 무슬림 남자)들이었다. 1차 탈레반 정권(1996-2001) 동안에 장관들과 교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적 기능을 물라들이 맡았다. 2002년부터 줄곧 거의 모든 사령관들과 리더들은 종교 교육이란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난 뒤 아프가니스탄은 무정부의 당파 싸움판에 빠져 들어갔다. 탈레반은 1994년부터 2001년 말까지 그들이 미군에게 패전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렸다. 

처음에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난민캠프와 마드라사에서 모집됐으나 점차 도시와 시골의 빈민들이 모집됐다. 2020년의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가장 적게 교육을 받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모집됐고 그들 상당수는 집을 떠난 고아들이었다. 대부분 삶에 환멸을 느끼던 청년들이 돈과 쉴 곳이 필요할 때 탈레반을 찾았다. 지금은 파쉬툰 출신이 다른 어느 것보다 중시되고 있다. 

탈레반이 최근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시키고 카불과 전 지역을 그들의 손아귀에 넣었으나 그들은 아직까지 국가를 운영할 아무런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그들은 서구를 반대하고 여성들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교육을 거부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파쉬툰족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탈레반의 이데올로기는 파쉬툰의 사회 문화적 규범과 전투적인 이슬람주의 그리고 데오반디에 근거한 이슬람 샤리아(율법)가 혼합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종교 연구와 이슬람 모자이크

소비에트 이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연구에서는 순니파의 수피즘과 수피 관행이 연구의 주류를 형성했다면, 1979년 소련의 침공과 무자히딘의 부상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적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수피가 무자히딘에게 소비에트와 싸우도록 격려했고 1980년대 더 많은 학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저항운동에서 이슬람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연구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과 그들을 지원한 자들은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지하드와 내전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종교의 정치화에 초점을 맞췄다. 1996년과 2001년 사이에 탈레반의 부상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관계에서는 정치적 이슬람이 연구의 주요 초점이 됐다.

2001년 이전에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의 모든 극단주의 세력들에게 열린 공간이 됐고 그들 중에는 중동 사람들이 거부하는 세력들은 물론 알카에다도 포함돼 있었다. 이때 오사마 벤 라덴이 탈레반을 찾아간 것이다. 이때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은 국제사회에 맡겨졌다. 극단적인 조직들이 2001년 9월 미국을 공격했다. 그 뒤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전쟁이 시작됐고 오사마 벤 라덴을 내 놓으라고 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결국 미국이 이끄는 국제적인 군대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9.11테러이후 한 달이 못돼 영국, 캐나다, 다른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군사작전을 감행했고 탈레반을 권력에서 몰아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의 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막겠다고 했으나, 20년 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결국 손을 들고 나왔고 일부 유럽 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난민이 테러를 저지를까봐 난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파키스탄의 난민에서 무자히딘(전사)으로

소비에트 군대가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이후 파키스탄의 '지아(Zia) 울 학끄' 장군은 고위 장성들과 이슬라마바드에서 회의를 갖고 3가지를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과 동참해 소비에트 연합과 직접적으로 대결한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파키스탄의 정책은 국제적인 지원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비에트 군사 개입을 막아내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도와서 소비에트 군대에 대한 지하드를 하고, 협상테이블에서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다고 했다.
 
여기서 지하드는 공산주의자 불신자(카피르)에 대한 지하드이고 파키스탄은 지하드를 은밀히 지원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소비에트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파키스탄으로 피란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난민 또는 무자히딘(전사, fighters)으로 구분됐다.
  
파잘룰 라힘 마르와트 박사는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이 물질적인 지원을 받고 종교적인 전사로 쉽게 변모한 사실을 지적했다(From Muhajir to Mujahid, 2004, IV). 그런데 난민으로 분류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파키스탄의 정착지역에 거주하고, 무자히딘은 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1980년대 초 소비에트 침공에 대항한 아프가니스탄 “무자히딘”이란 말이 서구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됐고 이슬람주의자의 지하드가 도입됐고 그 지하드를 장려하고 유지돼 왔다. 무슬림의 땅을 지키려고 무력으로 방어하는 무슬림을 무자히딘이라고 한다(John L. Esposito, 2003, 213). 그러나 무자히딘은 아랍어로 “지하드에 참여한 사람들”이란 뜻이고 자주 “전사”로 번역된다. 

지하드의 목적

지하드라는 말처럼 혼동되고 잘못 이해되는 용어는 없다. 우선 지하드가 “성전(거룩한 전쟁)”이란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성전이란 말을 언론과 학자들이 쓰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용어이다.
  
지하드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말과 행동에서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슬람 법학자의 사전에서 지하드는 “알라의 대의를 위하여 군사적 행동에서 온갖 노력을 다함”이란 뜻이다. 이런 경우 직접적인 참여와 간접적인 참여 둘로 나뉘는데 직접적인 참여는 실제 군사적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고 간접적인 참여는 군대에 식량을 지원하거나 재정지원 또는 지하드에 대한 찬성의 의사 표현 등이 포함된다. 

고전적인 학자들은 지하드의 내적인 면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자아에 대한 투쟁이었다. 욕정과 악이 스며드는 것에 대한 투쟁이므로 이것은 적에 대한 육체적인 싸움보다 더 힘들었다. 현대의 학자들은 지하드를 다음 세 가지로 나눈다. 사탄에 대한 내적 투쟁, 알라가 명령한 의무를 완수하기 위한 외적 투쟁, 이슬람을 위해 알라의 적들을 대항한 지하드 등이다.
 
오늘날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일깨워주는 지하드보다는 무슬림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지하드(armed jihad)를 선호한다.
 
일부 무슬림들은 지하드의 의미가 왜곡됐으므로 지하드가 중지됐다고 주장하나 사실 그렇지 않다. 이슬람 법에서 지하드는 적에 대항한 군사적 투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무슬림 군대를 지원하고 국경을 지키는 것도 포함된다. 

무슬림들이 늘 주장하는 말은 “적이 우리 집에 갑자기 들어와 가족을 죽이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사실 국경을 지키는 공동체적 책임은 아랍과 이슬람 국가마다 그 수준과 정도가 다양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하드는 아직도 중지되지 않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책임자가 정치와 군사적인 면을 잘 알고 지역적인 상황과 국제관계를 고려해 그가 지하드를 규제하고 단속하는 것이다(Exploring Islam, 2016, 53). 

탈레반 재점령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8년까지도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레반의 위험성을 잘 몰랐다.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한 뒤 우리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발전 상황을 보면 현대적인 정치 체제 특히 서구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프가니스탄에 필요하지 않다고 그들이 증명해줬다.  

둘째, 아프가니스탄은 사회적인 부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러 인종들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언어도 다르다. 

셋째, 아프가니스탄은 시대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외세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사회적 결속에 뿌리를 내린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계획에 참여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인들은 지난 20여년간 아프가니스탄의 국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국민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들 스스로 갈등을 많이 겪었고, 결국 탈레반이 카불을 향해 점차 진격해 오자 그들의 자리를 순순히 내주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부는 미국과의 계약에 따랐지만 그들 스스로가 이런 국가를 신뢰하기 어려웠고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탈레반이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결의를 다지지 못하고 스스로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이 떠난 아프가니스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들이 나왔지만 우리가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서구사회의 “민주주의 메카니즘”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극단주의자 세력들이 탈레반의 모델을 반복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이 다른 지역에서 찾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 사태의 과정이 너무 오랫동안 진행돼 왔고 아직은 그 결과를 우리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예측이나 전망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에 비춰 본 우리의 이슬람 이해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사태를 가볍게 보거나 중요한 발전상황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2008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이슬람주의의 위험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준 사람들이 있었다면 우리 국민이 아픔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이슬람에 이해가 좀 더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이슬람 세계 특히 꾸란을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 한글로 번역된 꾸란 의미번역서는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에서 번역됐다고 하지만 그 번역이 아랍어 본문과 큰 차이를 보인다. 

또 다른 예로는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우리나라 대사관 홈페이지 <문화정보>에 다음과 같은 꾸란 구절이 인용돼 있었다.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만을 경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에는 죄악이 아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신 분이니라.(꾸란 2장 172~173절). 

그러나 필자가 아랍어 꾸란에서 의미 번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믿는 자들아! 우리(알라)가 너희들에게 공급한 것 중에서 좋은 것(허락된)들을 먹어라. 너희들이 예배하는 분이 알라라면 알라께 감사하라. 그는 너희들에게 죽은 것(이슬람법에 따라 도살하지 않는 것), 피, 돼지고기 그리고 알라가 아닌 다른 것을 위해 도살한 것은 금지했다. 그러나 이런 (금지된) 것들을 먹을 수밖에 없다면 욕심이나 지나치게 먹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알라는 가장 자비롭고 용서를 잘해주신다.” 

이렇게 아랍어 꾸란에서 의미번역한 내용을 보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이 기아로 죽을 지경이 되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잘못된 꾸란의 의미번역을 학술연구나 언론 특히 국가의 공적인 홈페이지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유의해야 한다.

이처럼 외교부의 대사관 홈페이지에 있는 이슬람과 꾸란과 관련된 내용들이 해당 국가의 현실과 부합되는지 또는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결과에 따른 것인지 또는 오늘날 이슬람국가에서 행해지지 않는 옛 관습에 근거한 내용인지 그리고 해당 분야의 주제를 이슬람과 꾸란 전공자가 쓴 글인지 다시 한 번 검토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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