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레반, 알카에다 그리고 IS의 상호관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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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탈레반, 알카에다 그리고 IS의 상호관계 (1)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09.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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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탈레반의 창설과 로컬 지하드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11테러 공격 책임이 알카에다에게 있고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테러 조직의 은신처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사실 9·11테러와 상관이 없고 테러 공격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다. 이 두 조직은 서로 다른 목표, 이데올로기, 조직원 모집 대상이 다르다.

1989년 구소련군이 아프간을 떠난 뒤 아프간은 혼란과 무법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994년 가을 50여명이 어느 모스크에서 모여서 압둘 사마드를 아미르(amir 통치자)로 추대하고 물라 오마르를 군 사령관으로 지명해 탈레반 운동을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탈레반이란 단어가 이때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고 흔히 무슬림들이 “지식을 찾아가는 사람”을 아랍어로 “딸립”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슬람 종교를 배우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파쉬토어 탈레반이란 단어가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소비에트 군이 주둔하는 동안에는 탈레반이 이들을 대항해 지하드를 했다. 1996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레이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란 국명을 사용했고 아미르(통치자)로는 군사령관이었던 물라 오마르였다.

탈레반은 오직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웠기 때문에 지역적 관점, 제한된 범위, 직접적인 관심사에 집중했다. 탈레반은 그들의 지하드를 아프가니스탄으로 제한했다.

알카에다의 창설과 글로벌 지하드

알카에다의 창설자가 오사마 빈 라덴(우사마 븐 라딘)이고 그의 이름은 ‘라딘의 아들’ 우사마라는 뜻이다. 일부 언론은 빈라덴이라고 불렀으나 아랍인들은 라덴의 아들, 오사마이므로 오사마라고 부른다. 

그는 처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드에 참여했다. 거기서 그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시켰고 지하드를 위해 자금을 모았다. 사우디 왕가를 포함한 부유층은 이슬람이 공산주의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아프간 지하드를 위해 그를 도왔다. 오사마도 파키스탄을 거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2017년 11월 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신문은 무슬림 형제단 조직이 그를 파키스탄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오사마 빈라덴의 자필 문서를 통해 확인했다. 당시 아프간에 있던 2천여명의 아랍인들은 훈련을 잘 받은 무슬림이 아니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 압둘라 앗잠이 이들의 훈련 책임을 맡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강의하던 병원을 찾아간 오사마는 그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상대라고 여겼다.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돈과 연결망이 필요했고 오사마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앗잠은 아프간에서 무슬림이 해방된 다음에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워주기를 원했고, 아이만은 무슬림 국가들 안에서 혁명이 시작되기를 원했고, 오사마는 소비에트에 대한 지하드가 계속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카쉬미르, 필리핀에서 싸워주기를 바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
 
1988년 8월 페샤와르의 회합 이후 아랍 전사들의 리더들은 지하드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투표 결과 소비에트가 아프간을 떠난 다음에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고 지하드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6개월 안에 314명을 훈련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이 회합에 모인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알카에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알카에다는 아랍어로 알까이다이고 베이스(base)라는 뜻이다. 훈련시키는 베이스라는 것이다. 8월 20일 동일한 사령관들이 모여서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조직을 '알카에다'라고 불렀다. 

알카에다는 알라의 말씀을 높이고 알라의 종교(이슬람)가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들 집단은 오사마를 이 조직의 리더로 선출했다. 알카에다는 글로벌 관점, 확장된 범위,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다.

알카에다의 다국적 무슬림 조직망

수단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오사마와 알카에다 공작원들은 1996년 아프간으로 돌아왔다. 수단에 머무르는 동안 알카에다 공작원들은 부유해졌고 이같이 부유해진 알카에다는 탈레반에게 인기가 없었다. 알카에다 공작원은 인종주의자가 되어서 아프간인을 교육받지 못한 야만인으로 대했다. 

탈레반은 에어컨이 있는 멋진 새 차를 몰고 다니며 으스대는 알카에다 공작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알카에다 전사들은 종교 교육이 아닌 세속 교육을 받았고 아메리칸 대학교에 다닌 사람들이 많았다. 알카에다 리더들은 그들의 공작원들을 컨트롤 하지 않았고 대신에 정보제공, 접촉, 훈련, 재정 등을 통해 그들과 연락망을 강화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음주와 도박을 하는 알카에다 전사도 있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내부에서 싸웠지만 알카에다는 글로벌한 투쟁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시온주의자와 미국에 대한 공격이었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미래에 대한 결집력 있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알카에다는 그런 비전이 없었다. 알카에다는 지하드가 개인의 의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무슬림이면 아무나 지하드를 자행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알카에다의 리더들과 공작원들은 미국이 글로벌 헤게모니를 쥐고 악행을 일삼고 있지만 악행과 억압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관료들이 무슬림들을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을 살해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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