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랍세계 : 철학의 부재가 가져온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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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랍세계 : 철학의 부재가 가져온 문제점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10.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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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아랍 이슬람 사회에서 냉대 받아온 철학

2000년 초반 요르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졸업식장에서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내 수업에 아랍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보고 그는 아랍 무슬림 대학생들에게 철학은 비인기 과목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랍의 봄을 맞은 이후, 아랍 땅에서는 철학과 이성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사실, 아랍 무슬림들은 12세기 이후 이성을 사용하는 철학이 종교와 배치된다는 이유로 철학을 냉대하다보니 그들의 학교교육에서 철학이 자리를 잃게 됐다. 

우리나라는 철학을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배웠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철학을 실제 삶과 연결 짓는 수업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예로 윤리적인 탐색을 통해 우리가 아는 것과 우리의 실제 삶을 통합해 보는 맛을 체험하지 못했다. 마치 수학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보다 수학 공식을 달달 외웠던 기억만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무슬림들 가운데 오랫동안 살다보니 현대사회에서 무슬림들이 겪는 문제를 알게 됐고 결국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 때문에 밀려난 철학의 주변화로 무슬림 사회가 닫힌 사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무슬림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이성적 사고보다는 암기를 해 온 것이 그들의 삶을 전통에 묶는 족쇄가 돼 왔다. 

그래서 필자는 이슬람과 중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슬람 철학과 종교 간의 갈등을 꼭 알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심지어 아랍어 문법이 철학의 한 분야인 논리학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이슬람 철학을 대학 학부에서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꾸란과 아랍어 성경의 의미와 해석 참조). 이슬람 철학은 무슬림의 삶에서 이성(사고, 사유)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일부 무슬림의 극단성의 원인들

금세기에 우리는 무슬림들 중에 종교에서 극단성을 보이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는 과도한 치우침과 편견을 갖기 때문에 어떤 진실의 증거가 나타나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교적 극단성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성적 기준에서 벗어난 판단을 할 때 생겨난다. 어떤 진실이 나타나도 자신의 견해를 고집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슬림 여성들 중에 니깝(눈만 남기고 나머지 얼굴을 까만 천으로 가림)을 쓰고 관공서나 학교에 나타나는데 니깝은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슬람 대학에서 강의할 때 니깝을 쓴 여학생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시험시간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고 이슬람 국가에서 여학생의 얼굴을 강제로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다. 아랍혁명 이후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관공서와 수업 시간에 니깝을 쓴 여성은 근무하지 못하도록 했다. 

무슬림 극단성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학자들이 전달하는 지식 정보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무슬림 종교학자들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전달해주려고 할 때 그가 전승된 자료에서 일부만 가져다가 설명하고 나머지는 전해주지 않으니까 대중은 선택된 정보를 왜곡하게 되고 이것이 어느 한쪽으로 과장돼 치우치게 된다. 

세 번째는 신적 텍스트와 종교학자의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들 중 하나다. 무슬림 대중은 종교인들의 말을 신적 텍스트처럼 오류가 없다고 믿고 토론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 종교인들의 말을 변호하려고 애쓴다. 결국 무슬림들끼리 분파가 생겨났다. 

아랍의 루쉬디야가 확립돼야 

이처럼 일부 무슬림의 비관용성의 원인으로는 이성적 사고가 없는 것을 지목한다. 아랍혁명이 일어난 이후 이슬람 철학자들이 언론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다. 그 중에 무라드 와흐바 교수가 유명한데 그는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교수들 사이에서 강의를 못하고 쫓겨났었다. 무슬림 형제단이 정권에서 쫓겨난 뒤 아랍 국가에서는 계몽과 이븐 루쉬드 사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무라드 와흐바는 서구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갖게 된 원인은 이븐 루쉬드(아베로오스) 철학을 받아들여 서구 사회가 과학문명 사회로 진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랍 이슬람 사회는 이븐 루쉬드를 무신론자라고 비난하고 그의 책들을 불살라버렸다. 

무라드 와흐바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븐 루쉬드의 해석들에 근거한 서구의 철학 학파를 “루쉬디야 라티니야(Latin Averroism)”라고 부르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븐 루쉬드의 해석들에 근거한 아랍의 철학을  “루쉬디야 아라비야”라고 했다. 루쉬디야 라티니야는 중세후기와 르네상스 때 알려진 서구 기독교 철학자들의 가르침이었는데 이성과 철학이 신앙과 신앙에 근거한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했다.

그는 테러의 뿌리를 근절시키려면 루쉬디야 아라비야가 확립된 후, 루쉬디야 라티니야와 대화를 가져 이 둘 사이에 연합되는 사상의 물결 (타이야르)을 만들어서 인간적 루쉬디야(루쉬디야 인싸니야)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루쉬디야 아라비아는 없고 루쉬디야 라티니야만 남아있다. 루쉬디야 라티니야는 유럽에서 발달해 어두운 중세시대를  벗어나게 도왔고 또 종교 개혁 시대로 들어가게 하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무라드 와흐바의 주장에 의하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븐 루쉬드의 사상이 절멸돼 이슬람 세계를 후퇴하게 했고, 오늘날 이슬람 문명이 붕괴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루쉬디야 아라비야가 확립되지 않으면 종교 간의 대화나 문명 간의 대화가 아무 소망이 없다고 했다. 그는 헌팅턴의 문명 간 충돌 이론에서, 서구와 이슬람 세계 간의 해법을 찾을 수 없고 문명 간의 대화보다 먼저 할일은 서구 세계와 이슬람세계 간에 쌓인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두개의 루쉬디야가 문명의 길로 통합돼야 한다고 했다.

오늘의 아랍 이슬람 사회와 철학

오늘날 아랍 사회에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슬림들에게 역사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고 튀니지대학교 아말 무싸 교수는 말한다. 아랍 이슬람 사회에서 철학의 이야기를 꺼내면 지식인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이 겪는 고통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아말 교수는 철학이 있는 유럽의 현실은 아랍 이슬람 세계의 현실과 다르다고 했다. 서구는 철학적 결과물의 혜택을 받았다. 서구에서 철학은 자연 과학과 관련된 것이든, 인문학에 속하는 것이든,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됐고, 이는 유럽의 모든 대학 전공 분야에서 철학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서구에서 종교와 과학의 분리는 철학의 발전과 계몽주의시대가 오게 했다.  

그러나 아랍 세계의 경우는 서구와 완전히 다르다. 이슬람의 역사 속에서 무슬림들은 철학의 핵심을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랍과 이슬람 문화가 철학 분야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거부했고 또 그것을 종교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이슬람과 IS 참조).

이슬람 역사에서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Abu Hamid Al-Ghazali)는 철학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철학자의 모순’이란 책을 서둘러 쓰기 시작했고, 결국 모순이란 단어에서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12세기 철학자 이븐 루쉬드(Ibn Rushd)는 알가잘리의 의도를 파악하고 알가잘리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을 썼다. 이성주의에 근거한 변증신학자들을 거부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알가잘리가 철학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아랍과 이슬람 문화 시스템이 하나의 절대적이고 불변한 종교(이슬람)를 촉진하기 위해 작동하는 반면, 철학의 본질은 모든 사실을 의문과 의심의 테이블로 가져오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랍과 이슬람 문화영역에서 신학자와 철학자 간의 갈등은 그 결론이 항상 종교학자들 편에 서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종교적 담론의 권위가 지배적이었고, 철학적 담론은 주변화됐다. 무슬림들이 철학을 주변화시켰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아랍무슬림들은 과학의 참여자나 생산자가 되기보다는 과학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고 있다.

아랍 무슬림들이 철학과 화해할 때가 왔다

철학을 거부한 무슬림들이 이븐 루쉬드(Ibn Rushd)를 무신론자로 고발하고 그의 책들을 불태웠던 것을 그 뒤 철학을 전공한 무슬림 학자들이 안타까워했다.

아랍의 학자들이 지금 다시 이븐 루쉬드(Ibn Rushd)를 회자하는 이유는 아랍 무슬림들의 종교적 논의에서 이성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 아랍 세계가 지난 몇 년간 정치적 이슬람의 흥망성쇠를 직접 체험하면서 이제는 아랍 무슬림들이 철학과 화해할 때가 왔다. 철학은 아랍인에게 고정된 답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어떤 사실에 대해 질문하고, 상대주의 및 다원주의 문화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랍 이슬람세계의 학교는 암기 교육에 기초하고 있으며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가 이성이 형성되도록 그가 질문하고 의문을 가질수록 있는 교수 학습방법이 필요하다. 또 생각이 굳어지고 고정된 체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린시절부터 사고하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 아랍어 교육, 중동학, 이슬람 연구에도 이슬람철학이 선택과목으로 지정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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