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언어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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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언어와 악마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8.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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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은 말이 진리임을 의미합니다. 말은 신성한 것이고(언어신성관), 권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언어권위관). 오래전의 말일수록 신의 말과 가까웠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신과 인간이 직접 소통이 가능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말은 신에게 받았다는 확신도 있었을 겁니다. 말은 나와 신을 이어주기도 하는 진실함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변합니다. 말이 진실의 수단이 아니라 단순한 도구로 바뀝니다(언어도구관). 하긴 도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언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우리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의사전달과 감정의 나눔이 언어의 중요한 기능인 겁니다. 언어를 배우는 이유에도 의사소통이 핵심과제입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이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말이 거짓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거짓말은 말의 소통 기능을 깨뜨립니다. 소통을 방해하고 오히려 거짓 소통을 조장합니다. 그 말을 믿은 잘못으로 수많은 피해가 발생합니다. 사실 믿은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속인 이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속은 사람이 피해를 당한 것이기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남을 괴롭히는 거짓은 악마의 언어입니다.

악마의 언어는 더 끔찍한 장면을 낳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십볼렛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을 죽이는 장면인데 에브라임 사람을 구별하기 위하여 십볼렛이라는 발음을 해 보게 시켰다는 겁니다. 이 발음을 씹볼렛이라고 발음하면 에브라임 사람으로 알고 죽였다는 이야기인데 이 때 죽은 사람이 4만 2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발음으로 사람을 구별하여 죽인 사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구약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놀랍게도 악마의 언어는 구약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세기에도 악마의 언어는 작동을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비슷하게, 어쩌면 더 비참하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대지진의 피해를 조선인에게 화풀이한 사건으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선인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때 조선인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일본어로 십오엔 오십전(十五円五十錢)을 발음해 보라고 시켰던 겁니다. 일본어의 첫소리 유성음을 조선인은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악마가 언어를 사용한 겁니다.

지금도 언어는 차별의 수단으로 쓰입니다. 특히 발음은 놀림거리가 됩니다. 혀짧은 소리라고 놀리고, 시옷 발음을 못한다고 놀립니다. 사투리는 차별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로 전학 온 지방 아이들은 사투리로 놀림의 대상이 됩니다. 이제는 한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도 차별을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고 사고의 도구이고 진리의 도구입니다. 언어가 상처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언어가 차별의 도구가 되는 순간, 언어는 진짜 악마가 되는 겁니다. 

1923년 9월 1일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날입니다. 2023년인 올해, 이제 딱 100년이 되었네요. 남의 불행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맹자의 지적처럼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기는 일입니다. 맹자의 말처럼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행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린다면,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살상(殺傷)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 불행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일이 1923년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조선인이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단지 그 발음을 못했다는 이유로 희생을 당했습니다. 정말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그때 희생당한 일본인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물론 지진 때문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당한 조선인에게 깊은 애통함을 표합니다. 예기치 않은 타인의 희생이 내게 슬픔인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일입니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못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진실을 숨기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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