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국어와 썰렁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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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국어와 썰렁 주의보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8.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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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이 글을 읽기 전에 상당히 추워질 각오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늦여름이니 이 정도 썰렁함은 괜찮을 듯도 싶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썰렁 주의보를 내립니다. 물론 이 글을 읽으면서 키득거리실 분의 모습도 기대합니다. 키득거리셨다면 젊은 분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어학교재는 주로 무겁습니다. 내용도 무겁고 부피도 상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럴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학개론 수업 시간은 흥미롭다기보다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눈꺼풀의 힘을 느끼는 시간이지요. 이때 선생님들은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시도가 패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 눈높이 맞추기에 실패한 겁니다.

반의어 수업을 할 때는 종종 산토끼의 반대말을 물어봅니다. 90년대 초에 유행한 문제입니다. 몇 개나 대답할 수 있을까요? 일단 집토끼가 있습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끼토산을 이야기합니다. ‘끼토산 야끼토 로데어 냐느가’라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부르려면 숙달도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는 바다토끼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의 반대를 생각해낸 겁니다. 여기까지는 기본입니다. 죽은 토끼를 생각했다면 약간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실력입니다. 과학을 좋아하면 아마도 알칼리 토끼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은 경상도 사람이 맞힐 수 있다는 힌트가 있습니다. 바로 ‘비산’ 토끼입니다. 쌍시옷 발음이 어려워서 싼 토끼, 비싼 토끼를 ‘산 토끼, 비산 토끼’라고 말한 겁니다. 상당히 추워지셨나요?

어떤 가족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모두 살았다고 하는 80년대 문제도 있습니다. 아빠는 제비였습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답은 날나리입니다. 예상하셨나요? 큰아이는 비행 청소년이었습니다. 동음이의어로 만들어낸 농담이지요. 그럼 막내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답은 바로 ‘덜 떨어진 아이’였습니다. 어이없는데 재미는 있으셨나요? 무서운 농담이기는 하지만 동음이의어나 은어를 소개할 때 쓸 수 있는 예입니다.

각 언어의 음운적 특징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수수께끼는 모르다에 해당하는 외국어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를 설명하자면 ‘모르다’라는 어휘가 있는 언어는 거의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어, 일어, 영어 등에 모르다는 단어가 아니라 표현입니다. 알지 않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일본어로 모르다는 무언가요? 물론 넌센스 퀴즈입니다. 답은 아리까리입니다. 약간 발음도 일본어식으로 해야 맛이 납니다. 프랑스어는 알쏭달쏭입니다. 이때 발음을 ‘알숑달숑’처럼 발음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독일어는 애매모호입니다. 이때의 발음도 ‘애매모흐’처럼 독일어 분위기를 내주어야 합니다.

우간다말은 긴가민가입니다. 사실 아프리카말은 잘 모르는데 영화에서 본 정글 사람의 느낌으로 대강 흉내를 내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의 핵심은 중국입니다. 중국어에서는 일단 말로 안 하고,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고개를 한쪽을 떨어뜨리는 거죠. 그럼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압니다. 바로 ‘갸우뚱’입니다. 이 말을 할 때도 성조 흉내를 넣어주어야 합니다. 아리까리, 알쏭달쏭, 애매모호, 긴가민가, 갸우뚱이 모두 잘 모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이 발음과 어우러져 재미를 줍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언어학 유머가 있습니다. 최근 드라마에서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이 무어냐는 썰렁한 농담을 보고 예전의 농담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썰렁한 이야기지만 노력은 가상합니다. 저는 수업이 재미있기 바랍니다. 언어학 수업이 제가 재미있는 만큼 학생들도 재미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참,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은 ‘인천 엄마다’입니다. 저는 금방 알았습니다. 저의 내공이 상당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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