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세상을 닮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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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세상을 닮은 소리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10.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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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언어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멍멍설’이란 게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이 이름은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는 것에서 언어가 시작되었다는 학설입니다. ‘멍멍’이라고 하였으니 개 소리를 모방한 것을 학설의 이름으로 삼은 셈입니다. 소리를 따라하는 능력은 인간의 귀한 능력으로 보입니다. 자연의 소리 중 짖는 소리, 지저귀는 소리, 파도 소리 등 흉내 못 내는 소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잘 흉내 냅니다. 성대모사라고 하는데 그 재주만으로도 먹고 살 정도로 깜짝 놀라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소리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습도 흉내 냅니다. 물론 모습을 흉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짓이겠죠. 새가 나는 모양, 파도가 치는 모양, 동물이 움직이는 모양 등 흉내에도 재주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도 흉내의 주요 테마입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행해지는 춤도 근본적으로 흉내였을 겁니다. 새나 짐승의 모습으로 분장하는 것은 흉내 내기가 목적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탈춤이나 가면극은 모방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모습을 담아내는 방법이 언어에도 있습니다. 언어로 모습을 모방한 말을 의태어라고 합니다. 의성어가 소리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의태어는 모습을 모방하는 겁니다. 의성어는 대부분의 언어에 있습니다만,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바로 이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태어가 발달하였다는 말은 세상을 닮고, 세상을 담는데 관심이 많았음을 의미합니다. 의태어는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생길 수 있는 말입니다.

걷는 모습을 묘사하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의태어를 씁니다. 그리고 그 의태어를 들으면 어떻게 걷는지 느낌이 다가옵니다. 즉, 언어의 상징적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터벅터벅, 어슬렁어슬렁, 살금살금, 아장아장, 어기적어기적, 뒤뚱뒤뚱, 성큼성큼’은 말만 들어도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제일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재미있어하는 말이 바로 의태어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추상적인 모습도 흉내 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을 흉내 내면 어떻게 될까요? 민요를 보면 사랑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사랑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기에 사랑의 의태어도 하나가 아닙니다. 창부타령 중에 ‘사랑 창부타령’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 속에는 다양한 사랑 관련 의태어가 나옵니다. 물론 사랑에만 쓰이는 의태어는 아닙니다. ‘오목조목’ 알뜰 사랑, ‘왈칵달칵’ 싸움 사랑, ‘지긋지긋’ 애탠 사랑, ‘소근소근’ 은근 사랑이 보입니다.

알뜰살뜰 사랑하는 모습은 오목조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목조목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① 고르지 아니하게 군데군데 동그스름하게 패거나 들어간 모양 ② 자그마한 것이 모여서 야무진 느낌을 주는 모양으로 나옵니다. 두 번째 뜻이 알뜰이라는 표현에는 맞겠으나 첫 번째 뜻도 동시에 상상이 되어 더 재미있습니다. 왈칵달칵은 왈카닥달카닥의 준말인데 ‘단단한 물건들이 자꾸 서로 매우 거칠게 닿거나 부딪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사랑이라는 게 늘 마음이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전에 우리는 사랑은 싸우기도 한다는 것,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 노래임에도 싸움사랑을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헤어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맞추어 가는 사랑입니다. 요즘의 부부싸움은 칼로 무 베기인 경우도 많습니다. 도로 붙지가 않습니다. 

지긋지긋에도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슬며시 가볍게 자꾸 힘을 주는 모양. 계속하여 조용히 참고 견디는 모양’이라는 뜻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이 노래에는 첫 번째 의미가 맞습니다. 애태우는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진저리가 나도록 몹시 싫고 괴로운 모양’이라는 뜻도 있는데 애태움의 감정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근소근’은 ‘소곤소곤’과 같은 말입니다.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자꾸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라고 사전에는 나옵니다. 은근 사랑과 잘 어울립니다. 이렇듯 추상적인 어휘를 구체적인 의태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이 더 잘 다가옵니다.

의성어는 세상의 소리를 닮아서, 의태어는 세상의 모습을 닮아서 재미있습니다. 또한 의태어는 추상적인 세계까지 담고 있어서 더 흥미롭습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해서 인간은 자연의 소리, 모습과 하나가 됩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인간 언어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인 셈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닮고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