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씨 없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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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씨 없는 이름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8.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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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말은 변화 속도가 참으로 빠릅니다. 따라잡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엉킴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변한 말을 쓰는 사람과 예전대로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엉킴입니다. 특히 호칭의 변화는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變化無雙)합니다. 양반과 상놈을 따지는 신분제 사회에서, 독재 정권의 사회, 철저한 자본주의의 사회를 거쳐서 어쨌든 겉보기에는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높임법을 중요시하는 한국어의 특성상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호칭이나 지칭이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이름 뒤에 붙는 ‘씨’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알려진 사람에게는 씨가 붙지 않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씨를 붙이는 경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씨가 높이는 표현이었다면,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범죄자에게 붙어있는 씨를 보면서 이게 민주적인가, 인권인가 하는 생각에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저런 사람도 존중해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한편 어떤 이에게 직위가 없으면 그냥 씨로 통일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씨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름 + 씨’의 경우는 다른 씨에 비해서는 친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이름에 씨를 붙이는 것은 주로 연인 사이에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성 + 씨’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기분 나쁜 호칭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거의 낮춤으로만 쓰입니다. 직위도 직업도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합니다. ‘김 씨!’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내가 ‘박 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성에 씨만 붙이면 불편한 느낌이 커졌습니다. 아마도 ‘김 씨, 이 씨’처럼 불러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성 + 이름 + 씨’는 객관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내용도 주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직도 공공기관 등에서는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현용 씨!’라고 부르는 거죠. 예전에는 아주 당연한 호칭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씨가 점점 기분이 나빠지면서 이런 호칭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씨’ 대신에 ‘-님’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아직도 님을 붙이는 게 어색합니다. 어색은 하지만 그런 변화라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말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저는 ‘손님’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저를 부르는 사람은 주로 ‘고객님’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고객(顧客)은 사실 손님이면서 단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다지 그 가게에 고객이 아닌데, 저를 고객 취급해 주는 겁니다. 처음 갔는데 말입니다. 고마워해야 할지, 어색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많습니다. 손님이라는 말은 손에 ‘님’이 붙은 말입니다. 저는 종종 손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매우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라는 성불사의 밤이라는 곡의 가사를 들을 때마다 손의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손을 높인 표현이 손님인데, 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문을 보면 금방 씨 없는 이름들이 보일 겁니다. 정말 어떤 이름에는 씨를 붙이고, 어떤 이름에는 씨를 뺍니다. 씨만 자세하게 들여다봐도 세상의 변화를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떤 씨입니다. 어떤 씨로 불리고 어떤 씨를 부릅니까? 그럴 바에야 아예 씨를 없애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씨가 불평등의 요소가 되는 듯도 하니 말입니다.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만, 갑자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 미소 짓게 됩니다. 씨로 인해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지 않기 바랍니다. ‘감히 누구한테 씨야!’라는 말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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