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누가 성인(聖人)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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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누가 성인(聖人)인가?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11.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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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공자께 제자가 선생님이야말로 성인(聖人)이시라고 하자 공자는 손사래를 치며 나는 성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공자는 다만 본인은 배우는 것에 싫증을 내지 않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잇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인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자 같은 분도 성인이 아니면 누가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성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공자께서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인의 첫 번째 조건은 배우는 데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싫증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배움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공자는 논어의 첫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학이(學而) 편의 첫 부분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 不亦說乎).’라는 구절입니다. 논어를 학(學)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는 책의 첫 장만 읽으면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첫 문장이 모든 내용을 담기도 합니다.

공자는 배우는 사람이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게 재미있는 사람은 가르치는 것도 기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하고, 그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가르침에 게으를 일이 없는 겁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미 가르치는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늘 배우는 사람이 늘 가르치는 사람인 셈입니다. 공자는 성인은 아니지만 배움에 싫증 내지 않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공자는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이라는 말을 한글로 쓰면 사실 두 가지 의미가 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성스러운 사람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종종 어른이라는 의미의 성인(成人) 역시 성스럽다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인(成人)의 의미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만만한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이를 칭찬할 때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칭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이지만 누구나 사람이 아니기도 합니다. 참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가 바로 성인(聖人)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성스럽다는 의미의 성(聖)의 한자를 보면서 저는 성인의 덕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자를 자세하게 보면 깨달음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의 한자에는 귀 이(耳)와 입 구(口)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귀가 앞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성인에게는 듣는 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말을 해야 합니다. 잘 들은 사람은 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60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은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봅니다. 잘 들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듣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쉽게 오해하고, 분노합니다.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아예 들을 생각조차 안 합니다. 들을 필요도 없다든지, 말 안 해도 다 안다든지 하는 표현을 마구 쏟아냅니다. 성인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聖)이라는 한자를 보면서 이게 바로 공자께서 이야기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우는 것은 귀[耳]입니다. 듣는 겁니다. 가르치는 것은 입[口]입니다. 말하는 겁니다. 남의 생각을 잘 듣고, 이해하고, 기뻐하면 잘 배우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내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건넨다면 잘 가르치는 겁니다. 이렇게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평생 가다듬어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