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척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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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척의 바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11.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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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척의 세상은 그런 체하며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때로는 속이려고, 때로는 숨기려고 척하면서 삽니다. 그러한 척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삶에 바다를 이룰 지경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척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척하며 삽니다. 대표적인 것은 아는 척입니다. 모르는 것투성이인데도 우리는 아는 척하며 삽니다. 물어보면 얼버무리거나 때로는 일단 화부터 냅니다. 그런 것도 모를 줄 아느냐고 말입니다. 화가 많은 사람은 많이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습은 ‘있는 척’과 닮았습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마치 가진 척합니다. 겉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태도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겉이라도 꾸며 놓아야 사람이 속기 때문입니다. 예쁜 척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물론 예쁜 척만큼이나 지탄을 받는 척도 드뭅니다. 예쁜 척이 분노를 유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귀여운 척도 비슷합니다. 안 귀여운 사람이 귀여운 흉내를 내면 실패한 귀여움입니다. 오히려 위험해집니다. 

척하면 척, 척척박사인 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였다는 듯이 지긋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 척이 부처님도 경계하신 깨달은 척입니다. 제일 위험한 척입니다. 깨달은 척하는 사람에게 속으면 약도 없습니다. 사회면을 덮는 뉴스 중 가장 치졸하고 더러운 내용은 주로 깨달은 척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은 척을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살면서 깨달은 척이 가장 어이없고, 올바른 척이 가장 부끄럽습니다. 평생 노력해야 할 목표임에는 분명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슬픈 척은 슬프지 않아서 우습고, 기쁜 척은 그저 헛웃음이 납니다. 슬픈데도 슬프지 않은 척하는 것은 짠합니다. 눈을 연신 깜빡이며 눈물을 참습니다. 괜시리 하늘을 처다보고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나온 거라고 둘러댑니다. 그래서 종종은 미친 척도 합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알고 보면 사정이 있는 미친 척입니다. 

미친 척도 짠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을 맨정신으로 살 수 없기에 저리 미친 척을 할 겁니다. 세상의 비난을 피하려고 막다른 골목길을 내닫는 느낌입니다. 막힌 길에 숨이 막힙니다. 크게 부딪칠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미친 척에서 희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았는데 그 길이 새 길이 됩니다. 막힌 줄 알았던 길에 작은 문이 있고, 그 문이 스르르 열리기도 합니다.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가끔은 미친 척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척하면서 사는 게 인생일지 모르나 척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어쩌면 그 바다에서도 헤엄을 잘 치는 척하며 살았을지 모릅니다. 우아하게 팔을 저으면서 발은 엄청 빠른 동작으로 숨이 찼을 겁니다. 척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듭니다. 척이 척을 낳고, 척이 척을 부릅니다. 숨이 찰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새벽이네요, 창문에는 멀리 붉은 해가 돋아옵니다. 척하면서 살았던 시간이 가슴에 차올라서 먹먹합니다. 그런 내가 가여워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니,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왠지 청승맞네요. 처량하네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척이 내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슨 척을 할까요? 나는 내 앞에서는 그저 나일 뿐입니다. 척의 바닷가에 서 있는 외로운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