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욕(辱)과 욕(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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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욕(辱)과 욕(欲)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4.0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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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최근 들어 마음속에 화가 있다는 생각에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하긴 화가 있다는 게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이 싫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몸속의 화는 밖으로도 나옵니다. 일반적으로는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답답함이 생기기도 합니다. 때로는 입 밖으로 나와 욕이 됩니다. 화가 욕이 되는 순간입니다. 물론 제가 하는 욕은 쌍욕은 아니고 험담이라고나 할까요? 욕은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끊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뒷담화’겠네요.

그렇게 험담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이 험담은 그쪽을 욕망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싫어서 욕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그쪽을 바란다는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계속 제 머리를 맴돌고 가슴에 남았습니다. ‘내가 말로는 욕을 하면서 그쪽을 바라고 살아온 것인가?’하는 생각은 오랫동안 저에게 고통을 주었고, 수행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몸속의 화는 열이 되어 내 속을 빠져 나갑니다. 그야말로 열이 뻗쳐나가는 겁니다. 화가 머물러있으면 병이 되겠죠. 화가 머무르면 심장도 뛰고, ‘헛땀’도 납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분출하려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그 화가 뻗어 나가는 방향이 실제로 내가 욕망하는 방향이라니 참으로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멍해집니다.

우리는 정치를 욕하지만 정치를 욕망합니다. 우리는 돈을 욕하지만 돈을 욕망합니다. 우리는 권력을 욕하지만 권력을 욕망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처럼 살기를 마음속 깊이에서는 욕망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을 욕하지만, 그처럼 살기를 원한다니 얼굴이 달아오를 일입니다.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 부끄럽습니다.

스스로를 잘 모른다면 내가 욕하는 내용이나 대상을 살펴보고 내가 화내는 것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 대해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욕망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를 욕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욕망은 욕심이 되고, 욕구가 됩니다. 때로는 욕정이 되고, 때로는 노욕이 됩니다. 바라는 것이 나쁠 리 있으랴마는 욕하면서 바라는 모순은 사라지기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스스로의 삶을 웃으며 맞이하는 사람은 큰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욕도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할 즐거운 일이 많은데 남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요? 하루가 즐겁게 바쁜데, 욕 속에 빠져 붉으락푸르락 할 일도 없겠지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욕보다 칭찬이 많은 사람은 욕망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이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보현행원품의 ‘칭찬여래원’은 그런 진리를 들려줍니다. 어쩌면 칭찬은 구석에만 있는 게 아닌데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구석에 있는 잘못을 크게 들추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부쩍 늘어난 화와 욕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나를 좀 편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욕보다는 칭찬을 해야겠네요. 요즘 춥다고 좀 덜 걸어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 몸속의 화는 걸으면서 풀어야겠네요. 삶속에서 욕이 잦아지는 때는 수행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수행이네요. 지난 밤 꿈자리가 사나워서, 꿈속에 화와 욕이 많아서 아침 일찍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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