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사글세가 아니라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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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사글세가 아니라 월세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6.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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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외국인에게 전세라는 말을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돈이 있으면 집을 사고, 없으면 월세를 살아야 하는데 왜 애매하게 전세를 사느냐는 질문입니다. ‘전세’라는 말은 한국어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표현이라기보다는 제도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전세라는 제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서히 종말을 고하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전세가 없어지고 모두 자기 집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안 일어나겠죠. 전세의 자리는 월세로 바뀌어 가는 겁니다. 우리말에서 전세는 정말 옛말이 될까요?

예전에는 주로 월세라는 말 대신에 사글세라는 말을 썼습니다. 사글세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삭월세(朔月貰)라는 말이 어원이 희미해져서 사글세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삭(朔)은 초하루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초하루에 월세를 낸다는 의미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언중들은 사글세를 삯과 월세가 합쳐진 말로 보기도 합니다. 삯을 월 단위로 낸다는 의미였을 것이라 추측하는 겁니다. 내가 받은 품삯을 매월 내야 한다는 부담에서 그리 생각하였을 겁니다. 사글세는 왠지 우울한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튼 현재는 어원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글세라고 표기하거나 아예 월세라고 씁니다.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아예 사글세라는 말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제 옛말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글세는 어휘적으로도 이제 월세로 바뀌는 겁니다. 그런데 사글세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였습니다. 사글셋방이라는 말은 가난하다는 의미와 동의어처럼 쓰인 겁니다. 사글세를 살았다는 말은 그대로 가난했다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주거지와 관련하여 사글셋방만큼 우울한 느낌이 있는 단어도 적었을 겁니다. 저는 종종 사글세가 서글픈 ‘서글세’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말에서 사글세는 사라지고 월세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서글픈 마음도 함께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집값이 획기적으로 낮아지지 않는 한 월세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결혼을 앞 둔 사람에게 집은 큰 부담입니다. 월세가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이런 부담이 적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세와 내 집’ 그리고 그게 안 되면 사글세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사글세로 시작하면 왠지 패배자로 시작하는 느낌인 겁니다. 하지만 전세, 내 집은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내 집으로 시작하려면 장기 저리의 융자가 필요할 겁니다. 월세보다 약간 돈이 더 들어가는 구조라고나 할까요?

월세는 사실 노후에도 매우 좋습니다. 고령자들의 재산은 대부분 집이나 전세에 묶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전부 묶여있는 셈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일정금액을 연금식으로 받는 ‘역모기지’라는 제도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이 제도를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구조의 고령자 아파트가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고 병원이 가까운 곳에 많이 마련되기 바랍니다. 자식이 독립한 후에 굳이 넓은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돈이 부동산에 묶이지 않으면 비교적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힘든 사람이 많이 있을 겁니다. 국가의 복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저의 부모님도 노인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계십니다. 저도 나이는 고령자를 향해 가고 있고, 아이들은 결혼 연령이 되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모두 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저도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적당한 가격의 월세면 좋겠습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이나 거실에 책이 많이 있는 것은 조금 걱정이기는 하네요. 복지가 뒷받침이 되면서, 월세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은이는 월세로 편하게 독립하고, 노인은 월세로 편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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