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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웅녀 이야기와 한중의 역사갈등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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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4  14: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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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농경민족의 공주 ‘웅녀’

웅녀는 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의 어머니로 역사에 등장한다. ‘농경민족’의 공주로서 기마민족이 지배하는 배달의나라 18대 ‘단웅환웅’의 둘째부인이 되어 단군을 낳았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조선국 1세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단웅 환웅이고 어머니는 웅씨의 왕녀”라고 했다. 단군은 14세에 외조부의 나라로 가서 24년간 비왕으로 있다가 왕위를 물려받은 후, 구환을 통일하고 37세에 조선을 세웠다.”

부친 단웅 환웅이 붕어한 후, 단군은 첫째부인이 낳은 두 형과 싸워서 이기고 환웅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단군은 배달의나라 19대 환웅으로 즉위하는 대신, 모든 농경민족과 기마민족이 평등한 새로운 나라 ‘조선’을 개국했다. 큰일을 이루신 단군을 후세는 국조(國祖)라 하고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웅녀는 국조의 어머니가 되었다.

곰과 호랑이, 웅녀 이야기

“곰과 범이 이웃하여 살았는데 신단수 아래에서 신계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하였다. 환웅께서 허락하시고 먼저 신이 만들어 놓은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내놓았으니, 즉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매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쉽게 인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곰과 범의 두 무리가 먹고 삼칠일을 삼간 후 곰은 춥고 배고픔을 잘 이겨내어 바른 모습을 얻었지만, 범은 제멋대로 게으름을 피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사람의 모습을 갖춘 웅녀가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다시 단수의 무성한 숲 밑에서 잉태하기를 매일 간곡히 빌었다. 환웅께서 임시 환(桓)으로 변하여 그와 더불어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호적에 오르게 되었다.” 삼성기전 하편에 실려 있는 ‘곰과 범 그리고 웅녀 이야기’다.

우리에게 친근한 위 이야기는 토착 농경민족의 공주인 웅녀가 이주해온 지배세력인 기마민족 환웅천왕에게 능동적으로 프로포즈하여 결국 자식을 낳아 환족의 뿌리를 내리는 이야기이다. 즉, 웅녀는 한민족의 어머니요,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이 통합하는 과정을 압축된 신화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웅녀 가문의 후예들

삼한관경본기에서 ‘뒤에 웅녀의 군이 천왕의 신뢰를 받아 비서갑의 왕검을 세습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웅녀의 뒤를 잇거나 분파된 성씨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치우천왕의 선대인 13세 사와라환웅(BC2774~)때 웅녀의 군으로써 려(黎)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와 단허의 왕검으로 책봉 받으니 여러 곳의 왕검들이 따랐다”고 하니 훗날 구려(九黎)의 유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뒤에 460년 지나 신인 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비왕이 되었다. 섭정하신지 24년에 웅씨의 왕이 전쟁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환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과 어머니 웅녀에 관한 삼한관경본기의 기록이다.

단군조선의 마한도 웅녀의 후손인 1세 웅백다 마한으로부터 18세 아라사 마한까지 직계 혈통으로 세습되었고, 이후에는 19세 마한 ‘려원흥’의 직손이 세습했는데 려 씨 또한 웅녀의 지파이다.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

“웅씨에서 나뉜 자에 ‘소전’이 있었다. 8세 안부련환웅(BC3240~)때 명을 받아 강수에서 병사를 감독하였는데, 그 아들 신농이 백가지 풀의 맛을 보고 약을 만들었고 후에 열산으로 이사 가서 살았다. 또 소전의 별고에 공손(헌원)이란 자가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로 유배되었다. 헌원의 족속은 모두 그의 후손이다”(삼한관경본기)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은 ‘태호 복희’와 더불어 중국의 삼황인데, 신농과 황제가 모두 웅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 사서의 일방적인 기록일까? 중국사서 18사략은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중국사서 ‘18사략’의 기록

“염제 신농은 성이 강씨이다. 풍씨(태호 복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백 개의 풀을 맛보고 의약이 시작되게 하였고, 시장을 만들어 물건을 교환하게 하였다. 진에 도읍하였다가 곡부로 옮겨 8세를 전하고 오백이십년을 누렸다.”

“신농의 성은 강씨이고 황제의 성은 희, 또는 공손씨라 하며 이름은 헌원이다. 헌원은 유웅이라는 나라의 임금인 소전의 아들이다”라고 전하는데 유웅은 산서성 대동부에 있는 탁록의 벌판이며, 웅이라는 국명으로써 소전과 그 아들 헌원이 바로 웅녀의 후손임을 증거하고 있다. 뒤에 주나라를 일으킨 주 무왕이 후직을 시조로 하는 희씨이니 황제 헌원의 후예로써 역시 웅녀의 후손이다.

주 무왕의 국사인 태공망 여상이 강씨인데, 우리 사서에서는 ‘치우천왕의 후손들이 강수에 살았으므로 강을 성으로 삼았고, 강여상 역시 치우천왕의 후손이다’라고 했다. 18사략에서도 ‘여상이란 자가 있었는데 동해바다 위의 사람이다’라고 동방민족 출신임을 밝혀주고 있다.  

웅녀의 가계를 둘러싼 한중의 역사 갈등

이와 같이 우리 조상이 전한 ‘삼한관경본기’와 중국사서 ‘18사략’이 같은 내용으로 웅녀의 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은 ‘태호 복희’와 더불어 중국의 삼황인데, 신농과 황제가 모두 웅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주 무왕과 태공망 강여상도 웅녀의 후손이고 동방민족이라니 중국으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중국 역사의 본류인 주요 인물들이 배달의나라와 웅녀의 후손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동북공정, 요하문명론 등 중국의 역사공정은 출발한다.

치우천왕과 웅녀는 누구의 조상인가

중국정부는 하북성 탁록현에 ‘귀근원’과 ‘중화삼조당’을 1992년에 착공하고 1997년 완공해, 중화삼조당 안에 염제, 황제와 더불어 치우천왕을 고대 중국의 3명의 조상으로 모셨다. 조상의 사서를 읽고 깨달은 한국인들이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높이려고 하자, 중국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먼저 끌어 안아버린 것이다. 한국인이 치우천왕의 후손이라면 결국 ‘중화민족의 방계민족’이라는 논리가 된다. 이 논리를 구체화한 것이 ‘요하문명론’이고, 여기에서는 요하 일대의 모든 고대 민족을 중국의 전설적 조상인 ‘황제’의 후예로 설명한다.

단군신화의 웅녀는 2001년 9월 18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 국가삼림공원 안에 ‘백의신녀’라는 이름으로 높이 18미터, 무게 260여톤의 거대한 석상으로 세웠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변신한 것이다.

천손 환웅족이 만주에 유입된 기마민족이면, 농경민족인 웅녀족은 만주에 사는 토착민으로 그들의 거주지가 지금의 중국 땅이니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웅녀가 낳은 단군도 크게 석상을 세워서 ‘단군도 중국사람’이라고 우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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