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종이와 토닥임 그리고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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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종이와 토닥임 그리고 접기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4.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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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예전에 종이는 놀이였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종이를 접었다. 어릴 때 하던 즐거운 놀이를 떠올려 보면 종이의 힘을 알게 된다. 종이접기는 추억이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 나를 과거로 이끌고 가서 기쁨을 느끼게 한다. 종이는 여행이다. 

‘떴다, 떴다 비행기’ 노래는 실제 비행기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종이로 접어서 누가 더 멀리 날리나 내기를 했다. 다양한 비행기 모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길쭉한 종이 비행기였지만 나중에는 날개는 점점 더 넓어지고, 직선의 날개는 곡선으로 바뀌었다.
 
날개의 끝부분은 연필로 말아서 멋진 모양을 더했다. 정확히 계산은 하지 않았지만 온갖 물리의 원리, 공학의 원리가 듬뿍 들어있었다. 어떻게 해야 더 오래, 더 멀리 날 수 있을지 머릿속은 빠르고 기쁘게 돌아갔다. 우리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회전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 비행기보다 멋진 동작을 보여주었다. 종이비행기는 화려함이다.
 
종이배는 특별한 추억을 준다. 종이배의 특징은 무얼까? 종이로 배 모양을 만들고, 때로는 색칠도 하여 꾸민다. 날렵하게 만들어 속도를 올리기도 하고, 넉넉하게 만들어 안정감을 더하기도 했다. 가끔은 종이배 위에 초를 얹어 밝히기도 하였고, 초나 기름을 발라서 물에 묻지 않게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이배는 떠나보내야 했다. 아쉽지만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헤어짐을 배웠다. 아끼는 물건을 일부러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가? 종이배는 아쉬움이다.
 
어린 시절 가장 즐거운 놀이는 딱지치기였다. 신문지나 달력, 포장지든 모든 종이는 다 우수한 재료였다. 모든 종이가 재료가 됨은 종이접기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색종이로만 종이접기를 하여야 했다면 가난한 아이들은 종이접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비싼 종이로 딱지를 접어야 더 센 딱지가 되었다면 가난한 아이들은 늘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양한 종이는 저마다의 힘을 발휘했다.
 
얇은 종이는 얇아서, 두꺼운 종이는 두꺼워서 매력이 있었다. 자기가 넘긴 딱지는 다 자기 것이 되었지만, 집으로 가져간 기억은 거의 없다. 어차피 즐기자고 한 것이므로 나중엔 돌려주었던 기억이 많다. 하지만 딱지치기를 하는 동안은 경쟁심으로 늘 진지했던 기억이다. 우리나라 놀이는 대부분 경쟁은 좋아하지만 결과에는 큰 관심이 없다. 줄다리기도, 차전놀이도 이기고 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진 쪽도 만세를 불렀으니 말이다. 종이는 즐거움이다.
 
사춘기에 접었던 종이학은 또 다른 추억이다. 천 마리의 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수를 기어코 채우는 사람들은 나는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학을 접어본 적은 있지만 금방 포기하였다. 꾸준함을 배우고, 간절함을 배우는 접기가 ‘학’이 아닐까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종이를 만드는 모습은 장인의 모습처럼 숭고하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안 것이지만 우리의 조상에게 종이는 숭고한 의미인 경우도 많았다. 지승(紙繩) 공예품(종이를 꼬아서 만든 물건)들에는 저마다 눈물 담긴 사연이 가득하다. 종이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종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종이접기가 하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접었던 종이비행기나 종이배도 좋지만 지금 나이에 맞는 새로운 종이접기를 하면 어떨까 한다. 무엇이 좋을까? 어른들을 위한 종이접기 책도 기대해 본다. 종이를 꼬아서 생활에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 볼까?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고, 아이들과도 함께 만들 수 있는 추억 가득한 종이접기를 해 볼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하다. 종이에는 우리를 위로해 주는 토닥임의 온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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