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직업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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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직업이 뭐예요?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4.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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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직업을 묻는 것이 어떨 때는 무례한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밝히고 싶지 않을 때는 매우 기분 나쁜 질문이 된다. ‘직업이 뭐예요?’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정중한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다른 언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다. 한국어에서는 직업을 물을 때,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한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 경우는 ‘경찰’밖에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일 정도이다.

직업에 관한 어휘와 표현은 그 직업에 대한 관점을 나타낸다. 한국어에서는 직업을 물으면 직업명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농부, 어부, 운전기사’ 등은 직업명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어휘이다. 보통은 ‘농사를 짓는다, 고기를 잡는다, 운전을 한다’와 같이 표현한다. 직업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또한 한국어에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니는 직장명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엔지니어, 기술자, 사무직’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삼성에 다녀요.’, ‘현대에 있습니다.’와 같이 표현한다. 사실 삼성이나 현대에는 수많은 분야의 직업군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냥 직장 이름을 이야기하고 마는 것이다. 질문자도 더 이상은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직장명보다 자신의 직업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직업을 말하는 태도에는 몇 가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번째는 직업의 종류에 따라 직업명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직업은 대부분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의사’인 경우에 ‘사람을 치료합니다.’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변호사와 같은 대부분의 전문직이 직접 직업명을 노출한다.

직장명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좋은 직장에 있다고 하는 경우에는 직장을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직장명을 이야기하지 않고, 직장명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알지를 못한다. 직장명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일정하게 과시하려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직업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태도가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동자’이다. 한국어에서는 ‘노동자’라는 말이 금기어처럼 쓰이던 때가 있었다. ‘노동자의 날’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노동자라는 말과 근로자라는 말에는 어감의 차이가 크다. 노동자라는 말에는 ‘권리’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연상된다.

간호사의 경우는 원래 ‘간호부’로 불렀다. ‘간호부(看護婦)’의 ‘부(婦)’는 여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간호부는 간호원(看護員)으로 바뀌었고 다시 간호사(看護師)로 바뀌었다. 농부와 농사꾼, 어부와 뱃사람의 어감도 전혀 다르다. 청소부라는 말도 환경미화원으로 바뀌었다. 식모(食母)라는 명칭은 가정부(家政婦)를 거쳐 지금은 가사도우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직업을 묻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모두 시대와 문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종종 직업에는 귀천이 있음이 언어 속에 드러난다. 사실 이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직업을 보는 태도의 문제다.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을 통해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만은 잊지 않기 바란다. 자식을 키우면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게 참 어렵다. 늘 어렵지만 이 말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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