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교만에서 겸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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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교만에서 겸손으로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3.08.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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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삼국지(三國志)는 사실 많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 제갈량(諸葛亮)이 조조(曹操)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동남풍을 불러오기 위해서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이야기도 정사에는 없는 소설가의 상상이다. 그러나 삼국지가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허구는 오히려 독자들의 침을 삼키게 하는 흥미를 유발한다. 곳곳에 묘사된 작가의 상상력이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과 특징을 더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삼국지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제갈량과 오(吳)의 주유(周瑜)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 유명한 적벽의 싸움은 조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삼국지의 백미(白眉) 중의 백미인 적벽대전은 제갈량과 주유를 천하의 영웅으로 만들면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설파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5만여의 병력으로 100만 대군을 전멸시켰다는 대하 드라마 같은 묘사는 중국인들의 허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불세출의 두 영웅도 도(道)와 중(中) 그리고 화(和)라는 동양철학의 근본과 대립하면서 끝내 스러져간다. 주유의 칼끝이 마침내 제갈량을 겨누었지만, 하늘은 두 천재를 허락하지 않고 제갈량의 수명(壽命)을 좀 더 연장해 주면서 당대의 걸출한 장수였던 주유는 서른 중반의 젊은 나이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제갈량의 신출 기묘한 전술을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교만(驕慢)이 도(度)를 넘어선 것이다.

제갈량도 자기의 생을 결코 순탄하게 마감할 수 없었다. 북벌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실리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의 마음에는 이미 자기가 최고의 전략가라는 자만(自慢)이 있었다. 역시 교만이 도를 넘어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략가라고 해도 그 교만의 정도가 하늘을 찌르면 패망하는 법이다. 수많은 역사의 기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자신을 최고의 고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교만이고, 상대를 우습게 보는 것도 두말할 나위 없이 교만이다.

한중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양국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반합(正反合)의 단계를 지나왔다. 갈등과 조정 그리고 다시 화(和)의 국면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섞어가며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등과 충돌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10여 년을 중국에서 살아 본 필자의 결론은 “한중 양국이 스스로 교만했을 때 늘 분쟁과 갈등이 있었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이고, 중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유가 제갈량을 죽이려 한 것도 교만이고, 제갈량이 촉(蜀)의 군사력으로 천하를 통일하여 한실(漢室)을 재건하겠다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었다. 역사는 장강(長江)의 물결처럼 도도히 흘러가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법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고와 좀 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주유와 제갈량은 잠시 춘추전국 시대의 영웅은 되었을지언정 끝내 패배를 자초한 인물이 되고 만다.

최근 한중관계는 극도의 갈등 관계를 지나 조금씩 소강 국면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도 곧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갈등이 봉합되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것은 분명 길조다. 이런 현상은 한중 양국의 경제가 그만큼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이 기회에 좀 더 상대를 이해하는 겸손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인이 중국 땅을 밟으며 낙후된 대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이 지나치게 경제적 이익에 있었기에 중국인의 남루한 모습을 무시하고 값싼 인건비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상대를 이해하고 깊은 우정을 쌓으려는 노력에는 게을렀을 것이다. 서양화된 우리식 문명의 잣대로 상대를 경시했을 수도 있다. 중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갔다면 상대의 협조와 헌신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만이 넘치던 기업은 결국 도산하고 야반도주했다. 

중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주한 중국 대사의 거친 충고는 분명히 교만이다. 중국식 특색 사회주의가 늘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가 이미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보고도 있다. 자만과 교만은 늘 그렇듯이 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한중 양국 국민의 상호 혐오적인 감정은 서로를 향한 비난이 계속되는 한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노력과 정경 분리라는 그럴듯한 전략과 이론도 이런 비난과 교만의 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한중 두 나라는 주유와 제갈량이 가졌던 지나친 교만을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상대를 먼저 이해하는 화(和)의 정신이 필요하다.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겸손의 자세가 중요하다. 주유는 제갈량을 죽일 생각만 하고 훗날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했다. 제갈량도 사마의(司馬懿)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교만이 있었다. 다시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을 교만보다는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맞이해 보자. 한중관계의 해빙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