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중 수교 30년 - 중국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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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중 수교 30년 - 중국을 위한 변명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2.12.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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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카타르 월드컵 이후, 중국의 위드코로나 

코로나 사태가 전 지구를 휩쓸고 지나는 중이다. 그래도 우리는 지난주에 카타르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별 탈 없이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집어 던진 수많은 관중의 환호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메시’라는 시대의 영웅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열광의 모습에서 전염병을 이겨낸 인류의 건강함이 어떤 것인지도 느껴보았다. 확실히 사람에게는 그 무언가에 도취 되면 잠재된 에너지가 분출되는 강력한 원동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의 사정은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봉쇄와 통제의 그늘이 월드컵의 열기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뭇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은 늘 적당히 끝나는 법이 없다. 뒤이어 조롱과 비난이 줄을 잇는다. 급기야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야기도 나온다. 안타까움과 동정이라는 휴머니즘적 사고는 자취를 감춘다. 그토록 외쳐대던 인류애는 다 어디로 숨은 걸까?

중국의 코로나 사태가 이제 통제를 풀면서 확산일로에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의 언론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앞을 다투어 그 현장 소식을 퍼 나르는 중이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화장터가 인산인해다.” “"병원은 수많은 환자 때문에 거의 정상 운영이 힘들다.” “무슨 얼어 죽을 제로 코로나 정책이냐!” “진작에 위드(with) 코로나로 갔어야 한다” “최소한 백만 명이 죽어야 끝날 것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대(对) 중국 인식과 수준이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억지로 중국을 위한 변명을 해 보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떠나서 최소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현재까지는 상당한 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국가의 절박한 사태를 앞에 두고 어떻게 인민을 다루어야 할지를 안다는 것이다. 

장기판에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이란 용어가 있다. 상대가 양쪽에서 동시에 장군을 치면 아군은 그만큼 입지가 작아지게 마련이다. 중국은 왜 이제야 코로나 봉쇄를 풀고 위드 코로나를 선택했을까? 많은 서방의 언론은 군중들의 백지 시위가 공산당의 선택을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몰아갔다고 해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그 정도로 단순한 사람들일까? 백지 시위에 잔뜩 겁을 먹고 허둥지둥 봉쇄정책을 풀었을까?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전략

중국은 호북성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2020년에 이미 아비규환의 사태를 겪은 바가 있다. 백약이 무효고 그 어떤 처방도 효능이 없음을 보았다. 급기야 천만 인구의 거대 도시를 봉쇄하고서야 간신히 그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그 현장을 찾았고 많은 국가급 지도자들이 그 사태의 심각성을 볼 수 있었다. 서방의 선진국은 중국보다 훨씬 좋은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발생과 방어의 선순환이 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의 형편은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다. 아마도 중국 지도부도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역대 왕조는 민심이 무너지고 얼마 안 가서 망했다. 민심이 천심이고 그래서 모든 권력보다 민심이 늘 위에 있었다. 중국 당국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안다. 서방세계가 뭐라고 하든 중국은 중국만의 특성이 있다. 더구나 위드코로나 정책을 해야 한다는 서방 전문가의 주장은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왔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처럼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도 한때 얼마나 난리를 쳤나? 매일 시시각각으로 중환자 병동의 부족한 상황을 보도하며 전 국민이 가슴을 얼마나 졸였나? 만약 중국이 우한 사태 이후에 바로 위드정책을 고집했다면 중국은 이미 중대한 국면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백만, 아니 수백만이 죽어 가고 모든 의료기관이 마비된 상황을 무슨 수로 해결할 것인가? 역시 서방 언론은 지원과 동정보다는 정책의 실패라고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아무튼, 서방은 이제 코로나의 위협에서 탈출 중이고 중국은 그 결단의 시점을 고심하던 차에 백지 시위라는 상황을 봉쇄완화의 전환국면으로 삼은 듯하다. 어쩌면 중국 당국도 이런 시점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수도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 코로나 극복은 백신과 면역이라는 두 가지 길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보인가? 바보는 고사하고 아주 뛰어난 지략가이며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장기판에서 하수가 양수겸장을 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제 중국 인민들은 다른 방도가 없다. 봉쇄를 풀라고 난리를 쳤으니 의료시스템과 화장터의 과부하에 대해서 참고 인내하며 코로나와 굳게 싸워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목숨이 중요하니 불편해도 감수하자고 했던 당국의 봉쇄정책을 인민들이 저렇게 반대하니 도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중국 당국은 중국 인민들에게 전략적으로 ‘양수겸장’의 장군을 친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백만이 죽던, 천만이 죽어 나가던 인민들의 민심은 당국의 잘못으로 탓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중 수교 30년을 넘어 두번쨰 30년을 쌓는 지혜

필자는 흔히 말하는 친중(親中)도 아니고 반중(反中)도 아니다. 그러나 중국을 상대하려면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하고,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 라오펑요우(老朋友)가 되어야 한다. 10년의 고된 중국 생활에서 얻은 교훈이다. 오랜 친구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중국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논어의 두 번째 문장이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 했겠는가? 

우리와 중국은 다시 친구가 되기로 한 지 벌써 30년이 넘어서고 있다. 협력적 동반자에서 다시 전략적 동반자의 관계를 지나는 중이다. 실망스럽겠지만 중국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서방의 비난과 충고를 잘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깊이 이해하고 공부하고 더 나아가 최소한 왜 중국은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알고, 우선 친구가 된다면 그들은 누구보다 우리의 진심 어린 고언에 감사할 것이다. 

한중 수교 30년이 되는 지금, 우리의 중국 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돌아야 한다.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우(愚)를 범하면 우리는 영영 친구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끝으로 논어의 한 대목을 보자.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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