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다시 화(和)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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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다시 화(和)의 단계로!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3.05.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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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제갈량(諸葛亮)의 성공과 실패

제갈량(諸葛亮)은 자신을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劉備)에게 마침내 천하(天下)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설파한다. 삼국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사실 이때부터 시작된다. 적벽(赤壁)에서 동남풍의 존재를 정확히 예측할 정도로 천기에 통달했던 제갈량은 자신의 계획대로 천하를 위, 촉, 오 삼국으로 나누고, 유비와 조조는 세상을 떠난다. 촉의 신하와 백성들은 이제 칼자루를 내려놓고 삽과 낫을 들고 농사일에 전념하길 바랐다. 전쟁의 피로는 오래가면 좋은 법이 아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계속해서 북벌을 주장했고, 그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를 써 내려갔다. 내용은 구구절절 가슴에 닿는 충정의 소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네 차례에 걸친 북벌은 결코 성공의 깃발을 올리지 못하고 천하의 공명(孔明)도 전쟁터에서 숨을 거둔다. 촉의 멸망은 이제 시간만 기다리면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위자패지(爲者敗之)요 집자실지(執者失之)라 했다. “작위하는 자는 일을 그르치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된다”는 순자(筍子)의 말이다.
 

중국의 근대사 100년의 부침

중국의 근대사는 실로 험하고 치욕적이다.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제 3대 135년 ‘강건성세’의 번영으로 중국의 기세는 천하를 덮을 듯 했다. 그러나 천하가 곧 중국이고 중국이 바로 천하라고 여겼던 청나라 황제의 오만과 무지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중국 인민은 비로소 세상이 생각보다 넓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중국이 천하(天下)의 전부가 아니었다. 중국 치욕의 100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존엄한 천자(天子)는 유명무실했고 막강하다고 여겼던 북양함대는 일본의 군함 앞에서 고철에 불과했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미국이 원조하던 장개석 정권은 분열과 부패로 타이완으로 줄행랑치면서 마오쩌둥은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중국 인민들은 마오(毛)가 다시 천하의 주인이 되어 중국의 위신을 세워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마오의 개혁은 무리한 약진운동으로 8천만의 인민을 굶겨 죽이면서 막을 내려야 했다. 이념과 경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에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수억의 인민은 당장 춥고 배가 고팠다.
 

등소평의 등장과 '중국식 자본주의'

등소평의 등장은 중국이 선택할 수 있었던 신(神)의 한 수였고, 그는 세계 경제의 흐름과 자본주의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중국식 자본주의”라는 편법을 택했다. 경제는 부흥했고 인민들은 열심히 일터에서 땀을 흘렸다.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선진국은 중국의 값싼 생활용품을 수입하며 실물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한국의 수많은 업종이 중국으로 몰려가서 기사회생의 덕을 보기도 했다. 

이런 세월이 반세기를 거치며 세상의 판도는 이제 미 중 갈등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간단하다. 중국은 100년의 치욕스러운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전환 중이다. 중국도 “할 말은 하겠다!”라는 뜻이다. 다 망가졌던 중국이 이렇게 빨리 큰소리를 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늘 그렇듯이 똑똑한 서방의 수많은 경제학자의 예상은 틀렸다. 아마도 미래 예측도 그럴 것이다. 

최근의 우리 보수 언론은 중국에 매우 엄격한 편이다. 긍정적인 언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 국민의 대중국 인식도 매우 안 좋다. 중국도 사정은 같다. 사드(THAAD) 배치를 기점으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이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는 하수의 전략이라고. 아직도 중국에는 100만에 가까운 우리 교민들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고 우리 땅에도 역시 많은 중국인이 살고 있다. 예로부터 하수는 다툼으로 끝을 보지만 고수는 싸우지 않고 상대를 이긴다. 그렇다! 대립보다는 상생(相生)이 고수의 전략이다.
 

화(和)는 천하의 공통된 도(道)

노자는 말했다. 회오리바람은 한나절을 넘기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고. 서양의 사고방식이 계산적이고 기계적이라면 동양의 방식은 “도리(道理)”다. 하늘의 도(道)를 따라 중(中)과 화(和)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 동양의 인식세계다. 그래서 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중(中)과 화(和)를 극진히 발휘하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이 제대로 자라게 된다.” 미국이 중국의 사고방식을 서양식으로 해석하면 결코 화(和)를 이룰 수가 없다.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는 인간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중국도 이제는 100년의 굴욕을 역사의 페이지로 넘겨야 한다. 제갈량의 허무한 죽음이 말해 주듯이 억지를 부리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되는 법이다. 밝은 도(道)는 어두운 듯하고, 나아가는 길은 물러나는 듯하고,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가장 결백함은 혼탁한 듯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老子) 중국 또한 동양적 사고로 서양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孔子) 부디 한중 양국이 다시 화(和)의 단계로 나아가길 빌어본다. 왜냐하면 “화(和)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道)-중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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