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반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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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반도의 봄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9.03.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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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바야흐로 봄이다. 전주천의 냇물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물줄기가 굵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개울 속의 모래와 돌멩이가 기지개를 켜면서 들썩이기 때문이다. 개울 옆 산책 길 언저리에서도 봄의 기운은 완연하다. 흘러가는 냇물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변의 새들도 소리 높여 창공으로 치솟는다. 봄이 어느덧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빙동삼척 비일일지한 (氷凍三尺 非一日之寒)”이라는 고사 성어를 썼다. 글자 그대로 “석 자 두께 얼음은 하루 추위로 얼지 않는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북핵 문제가 칼로 무 베듯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진전이 잘 안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원인과 함께 협상 과정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북미의 협상과 결렬을 보면서 동서양의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느껴 본다. 관계 중심의 동양문화와 계산 중심의 서양문화는 겉보기에는 융합이 잘 될 것 같아도 마지막 순간에 늘 사달이 난다. 우리가 중국 사업에서 무엇보다 관계(꽌시)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꽌시가 없는 중국인의 삶은 죽은 인생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유감없이 그 동안 미국에 구축해 놓은 꽌시를 활용했다. 중국에 와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사람은 모두 친(親) 중국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인의 사고(思考)로 보면 남에게 훌륭한 접대를 받고 그 친절을 잊어버리는 것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도리(道理)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우리가 트럼프를 잘못 알았다”는 탄식이 나왔을까!

북한과 미국의 베트남 협상 결렬도 그 맥락은 비슷하다. 북한이 내세우는 조건은 다분히 인간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북 제재를 풀어주면서 핵 폐기도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관계 중심의 사고체계로 보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주면 받는 것이고, 서로 신뢰를 갖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도리의 영역이다. 우리 동양인의 인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런데 미국은 다분히 수학적이고 계산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서양식 계산법으로는 3 빼기 3이면 당연히 0이 나와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자기들의 요구 조건이 윈윈이 되려면 더하기와 빼기가 확실해야 한다. 북한에서 깔끔하게 모든 것을 내 놓아야 계산 등식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3만 내 놓고 자기들이 5를 주면 북한이 + 2가 되고 미국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뜻이다. 반면에 북한은 조금씩 신뢰를 쌓다보면 이런 계산의 어그러짐은 분명히 해결된다는 논리다. “왜 내가 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믿어달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물려받은 유전자와 문화적 환경의 영향은 개개인에게 일종의 관습 같은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요 근래 엄청난 기 싸움을 하는 중이다. 말이야 협상이고 회담이지 전쟁 이상의 싸움이다. 중국이 이제 미중 무역 전쟁에서 한 발 물러났고, 북한도 역시 미국의 계산법에 당황하는 듯하다. “우리 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의 계산법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최선희 북한 외무 부상의 말에서도 그 인식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한반도에 봄이 오는 중이다. 제주의 백록담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머지않아 새봄의 충만한 기운이 가득할 것이다. 여전히 자유왕래가 힘든 임진강의 버드나무에도 버들강아지가 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삼천리금수강산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봄이 아니다. 석 자 두께의 얼음이 하루 밤의 추위로 얼지 않는 것처럼 70년 분단의 얼음도 3월의 며칠 봄빛으로는 녹지 않는가 보다. 노자는 일찍이 상생(相生)을 삶의 기본이라 말했다. 부디 이 땅에 상생의 봄이 오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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