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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감정 관련 관용표현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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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4  1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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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관용표현은 주로 문화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언어의 관용표현이 재미있는 것도 문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관용표현을 보면 어떤 생활 태도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 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말의 관용표현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많습니다. 일단 구어(口語)와 문어(文語)의 관용표현이 좀 다릅니다.

기본적으로는 구어는 구어다운 면이 있고, 문어는 문어다운 면이 있습니다. 구어는 우리 실생활에서 꾸밈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좀 더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내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어의 관용표현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느낌이 강합니다. 신문기사의 제목에 관용표현이 많이 쓰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겁니다.

우리말 관용표현 중에는 감정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관용표현은 자주 쓰이다가 특수한 의미로 굳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늘 감정을 표현하면서 살기 때문에 감정 관련 관용표현이 발달하였을 겁니다. 특히 구어의 경우에는 빈도가 높은 10개의 관용표현 중 6개 정도가 감정에 관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감정 관련 관용표현 중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6개의 감정 관련 관용표현도 모두 부정적인 감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를 쓰고, 기가 막히고, 간장이 녹고, 속이 타고, 애가 타고, 간담이 썩는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보면 우리민족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을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정에는 따뜻한 감정뿐 아니라 어두운 감정도 포함됩니다. 아픈 감정도 많습니다. 그게 정이겠지요. 다양한 감정이 정일 테니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말에서는 기가 막히다가 좋다는 감탄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이없는 상황에서 쓰게 됩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기가 차다’도 있습니다. 기가 흘러가지 않고 막혀있거나 꽉 차 있으면 답답함을 느낄 겁니다. 기를 흘려보내고 잘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기가 막히면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울화(鬱火)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머리끝으로 올라갑니다. 모두 기가 막혀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속이 타고, 애가 타고, 간장이 녹고, 썩을 겁니다. 아픔을 표현할 길이 없기에 ‘타고, 녹고, 썩다’로 표현했겠지요. 실제로 창자가 타고, 녹고, 썩는다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창자가 타거나 녹으면 사람은 정신을 잃고 죽고 말 겁니다. 어쩌면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겠죠. 하지만 감정의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입니다. 저는 관용표현을 보면서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처절함을 느낍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표현이 생명력을 얻어서 관용표현으로 굳어진 겁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고통이 줄어든 사회 같습니다. 고통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고, 고통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배고픈 고통과 전염병의 고통이 너무나 심하였습니다. 굶어죽고, 전염병으로 죽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습니다. 유아 사망률도 너무나 높았습니다. 자식이 죽는 고통을 무엇에 비길까요?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는 엄마도 많았습니다. 부인이나 엄마를 잃는 고통을 무엇에 비길까요? 우리도 70년 전만 해도 전쟁을 겪었습니다. 현대인의 고통과는 다른 엄청난 아픔이었을 겁니다. 그런 세월을 지내 오면서 관용표현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처절한 아픔을 나타내는 관용표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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