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의릉과 중정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 의릉과 중정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8.06.27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서울은 의외의 부분에서 복을 받은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도시마다 그 흔하던 관가(官家)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한옥이며, 초가며 흔적을 찾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옛것을 무너뜨린 셈입니다. 발전의 어두운 측면이죠. 서울도 마찬가지여서 북촌 정도만 겨우 한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서울에는 동네마다 능이 있어서 옛 정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공원도 되고, 산책길도 되고, 아이들의 소풍, 현장학습의 장소도 됩니다. 물론 대부분 사대문 밖에 있어서 지금 능이 있는 곳은 대부분 외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 자리하고 있는 능도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천장산(天藏山) 주변은 왕릉의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이 여러 곳 있습니다. 홍릉과 의릉이 있고,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묘인 회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희대와 한국외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변에 있습니다. 능이 아니었다면 벌써 개발의 폭풍에 휘말렸을 동네가 능 덕분에 개발을 피한 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이유로 능에는 의외의 시설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국가가 원하는 시설을 쉽게 설치해 버린 것이죠. 문화재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시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능 주변을 살펴보면 그런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능에 가게 되면 한 번 찾아보세요. 홍릉과 광릉에는 수목원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곳이 태릉이죠. 사람들은 태릉이 누구의 능인지는 모르는데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던 곳이라고는 금방 압니다. 태릉은 선수촌 외에도 스케이트장이나 놀이공원 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태릉 근처에 살았었는데, 그 때 아이들과 태릉에 가서 동물원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능 옆에 동물원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물론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태릉에 사격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늘 들려오는 총소리에 태릉에 잠드신 문정왕후는 제대로 잠을 이루었을까요? 지금은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 유산이 되어, 제대로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의릉에는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이지만 예전에는 중앙정보부가 있었습니다. 천장산 자락에는 그래서인지 지금도 초소가 많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찾아보지 않았으나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은 뒤쪽에 있는 중앙정보부 때문에 높이에 제한을 받아서 오랫동안 완공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이미 오래전부터 공사 중이었는데 박사 학위를 받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이미 중앙정보부는 이전을 한 후였습니다.

▲ 구 중앙정보부 강당
▲ 의릉 그리고 구 중앙정보부 강당

의릉에 가 보면 지금도 뒤쪽에 중앙정보부 강당이 남아있어 을씨년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의 권력이 중앙정보부에 집중되던 시절이고, 민주주의가 탄압을 받던 시절이었으니 중앙정보부는 그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 강당은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바로 7.4 남북공동성명이 서명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7월 4일을 미국 독립기념일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에게는 통일의 첫발을 떼게 했던 날입니다. 자주, 평화, 이념초월의 원칙이 천명된 성명의 내용은 지금 봐도 훌륭합니다. 당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곧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저는 7월 4일도 기억하고 기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 김종필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가 바로 첫 중앙정보부장이었고,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개관식에서 축사를 했던 인물입니다. 역사는 참 우리가 알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