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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차라리의 세상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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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8  1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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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차라리>는 보통 뒤에 ‘~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식의 아쉬움이 함께 나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할 때에, 저리하는 것보다 이리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 대비되는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마땅치 않을 때 상대적으로 나음을 나타낸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차라리 ~ 해라’라는 표현을 보면 이런 정의가 잘 다가오죠. 차라리의 의미는 보통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면의 느낌입니다. 차선이나 차악의 느낌인 셈입니다.

차라리는 중세국어에서 해석이 ‘영(寜)’으로 나옵니다. 며칠 전 어휘사(語彙史)를 공부하다가 차라리의 원 의미가 편안하다의 뜻이었음을 보고, <차라리>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겁이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될 수는 없겠죠. 그때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대의 마음이 평안해 질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차라리’가 쓰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차라리가 쓰이는 장면에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차선이든 차악이든 간에 억지로 마지못해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하기 싫은 것을 떠밀려서 하게 된다면 행복할 수 없겠죠. 아니 오히려 반항 심리가 생길 겁니다. 원망과 분노가 가득해 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를 통해서 마음이 편안해 져야 하는데 오히려 불편하면 안 되는 겁니다.

차라리의 원 의미가 편안하다는 것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에는 아쉬움이 담겨 있고, 걱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현 상황이 안타까운 겁니다. 이런 마음은 원망보다는 아쉬움이고 걱정이겠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표현은 차라리의 정수(精髓)를 보여줍니다. 이 표현은 주로 부모님이 쓰시는데 자식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답답하여 하는 말입니다. 내가 아픈 것이 자식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편하겠다는 표현이죠.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자식의 아픔을 보는 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라는 표현이 다른 사람을 향할 때도 유의해야 합니다. 보통은 차선이나 차악을 권유할 때 쓰입니다. 이것을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것을 하라는 명령이나 권유에 쓰입니다. 이때도 화를 내며 상대에게 이야기한다면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없겠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듣는 이에게 맡는 일을, 상황을 알려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너에게 어려운 이 일보다는 너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게 좋겠다는 진심이 필요한 겁니다. 차라리는 억지로 떠맡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화를 위해서, 배려를 위해서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게 차라리의 미학입니다.

차라리를 후회나 실망의 장면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단순히 후회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를 통해서 용서하고, 차라리를 통해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 새 힘을 얻고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는 우리 모두 편안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남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하거나 그저 신세를 한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차라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장면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공감과 조화, 배려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차라리를 사용하면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면 원래의 어원을 잘 찾아서 사용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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