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사투리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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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사투리에서 배운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7.10.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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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사투리는 고쳐야 하는 말이 아니라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말이다. 사투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거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부럽다. 그래서인지 사투리 공부가 더 재미있다. 기회가 되면 시골의 어르신들과 오랫동안 사투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고 방언사전을 보면서 상상과 현실의 양쪽 나래를 펼쳐 본다. 그러면 사투리로 날게 된다. 언어의 하늘을.

신체 관련 사투리나 병에 관련된 사투리에서 언어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눈초리>라는 말은 사투리에서 눈꼬리로 나타난다. 초리와 꼬리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눈까풀>을 눈뚜껑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뚜껑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글이나 말에서 살려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흥미로운 사투리는 <다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리를 제주에서는 가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처용가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도 있다. 처용가에 가달이 넷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가랑이가 넷이라는 설명으로는 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리가 넷이어야 맞는 해석이 된다. 그런데 가달의 흔적이 제주어에 남아있는 것이다.

<대머리>의 경우도 재미있다. 단어의 구조상 ‘대 + 머리’이므로 대가 머리카락이 없다는 뜻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방언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접근도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머리의 사투리로는 ‘번대머리/ 번대/ 뻔들머리/ 민대머리’ 등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대’의 의미를 머리카락이 없다는 뜻으로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번’은 보통 빛을 의미하기 때문에 ‘번대머리’는 빛나는 머리로 볼 수 있다. 오히려 ‘대’를 머리의 뜻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번대’는 더 그렇게 볼 가능성을 높인다. ‘민대머리’도 ‘민’이라는 말은 민둥산, 민머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대’ 때문에 머리카락이 없다는 뜻으로 된 것이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을 바탕으로 ‘대가리, 대갈팍’ 등의 어휘를 살펴 볼 수 있다. 이 어휘들은 그냥 머리를 의미한다. 머리카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병에 대한 것 중에서 <이질(痢疾)>을 ‘피배앓이’라고 하는 곳도 있어서 흥미롭다.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꿀 때 참고한다면 민중의 언어 의식과 삶의 모습을 좀 더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조상들은 병을 높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어휘가 <마마>이다. 보통 천연두나 홍역을 마마, 손님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마 대신에 ‘마누라, 큰마누라’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마누라는 아내의 의미가 아니라 극존칭의 의미이다. 우리말에서 아내를 나타내는 <마누라>의 근원 역시 극존칭에서 왔다.

<버짐>을 버듬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발음으로 보면 비듬과의 관련성이 느껴진다. 얼굴 등에 나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버짐이라고 한다면 머리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은 비듬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듬>의 방언에도 비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함경도에서 나타나는데 버짐과의 연관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로의 방언이 연관성의 고리가 되는 예이다.

<볼거리>라는 병은 볼에 나는 병이다. 여기에서 ‘거리’는 병의 뜻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방언에 <학질>을 ‘말거리’라고 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거리가 병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월경>을 순우리말로 ‘달거리’라고 하는데 여기의 거리도 병의 의미이다. 예전에 우리 조상은 달거리를 병으로 본 것이다.

이 밖에도 사투리는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예를 들어 <배꼽>을 배꾸멍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어찌 보면 배의 구멍이니 이 표현이 정확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손뼉>의 경우는 손바닥으로 표현하는 곳도 있다. 손뼉을 치는 것이 곧 손바닥을 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편 손뼉은 손 + 벽의 구조이므로 ‘벽과 바닥’의 관련성도 생각해 보게 된다. 집에도 ‘벽과 바닥’이 있지 않은가? <머리숱>을 ‘머리숲’이라고 표현하는 곳도 있어서 흥미롭다. 숱이라는 말과 숲의 연관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 <식은땀>이라는 말을 헛땀으로도 표현한다. 땀이 식었다는 표현도 재미있지만 쓸데없이 흘렸다는 의미의 헛땀도 재미있다. 가능하면 둘 다 살려 쓰면 좋을 듯하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입천장>에 대한 사투리다. 입천장을 사투리에서는 ‘입하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입에 있는 천장보다 입에 있는 하늘이 훨씬 부드럽지 않은가? 살려 쓰고 싶고 자주 쓰고 싶은 사투리다. 사투리는 보물창고다. 사투리를 더 살려 쓸 방안들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자칫하면 다 사라진다. 창고가 텅 비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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