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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악을 쓰다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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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6  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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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에게는 살면서 헤쳐 나가야 할 무수한 일이 있다. 어렵고,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움에 우리는 수없이 주저앉게 되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사는 게 참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말에서는 무엇을 쓴다는 표현을 쓴다. 무엇을 쓰면서 살아가야 할까?

제일 많이 쓰는 것이 힘을 쓰는 게 아닐까 한다. 어떤 이는 노동이 괴로운 것이라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꼭 동의하지 않는다. 내 힘을 써서 다른 이가 즐거워지는 일은 기쁜 일이다. 내 힘으로 다른 이를 돕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특히 가족을 위해서 힘을 쓸 수 있다면 고통이 아니라 차라리 축복이다.

힘 써 일하고, 힘껏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꿈을 꾸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게 힘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언어적으로만 보자면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다. 힘을 써야 하니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힘을 쓰고, 힘이 들어가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일은 기쁨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악을 쓴다>는 말도 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악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악다구니나 아가리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특히 아가리는 ‘악 + 아리’의 구조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악은 이를 악물고 한다는 의미의 악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의 악이라는 말은 한자어로는 위턱과 아래턱을 총칭하는 ‘악(顎)에서 온 말로 보인다. <악물다>라는 말은 위턱과 아래턱을 꽉 다물었다는 뜻이 된다.

악이 들어가는 다른 단어로는 <악다구니를 놀리다>도 있다. 이 말은 기를 쓰고 욕설을 한다는 뜻이다. 또한 <악머구리 끓듯>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 말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시끄럽게 마구 떠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악쓰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악머구리를 끓듯>과 일면 비슷하다. 악을 쓰는 것은 악을 내어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을 쓰다는 말의 기원은 발악이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발악(發惡)의 악은 나쁘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쓴다는 의미이다. 악을 내 뻗치는 느낌이다. 바로 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악에 받친다는 말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악이 밀고 들어온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악을 쓰고 달려들고, 악을 쓰고 얼굴에 핏발을 세운다. 착함은 사라지고, 내 속의 잔인함까지 드러나게 된다. 그야말로 선이 아니라 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얼굴이 벌게 진 모습에서 선함은 찾을 수 없다. 악을 최후의 수단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악은 최후까지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경우에는 너무 힘들어서 악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을지 모른다. 악이라도 써서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유혹이다. 잠깐 나쁜 짓을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역설적이지만 악을 쓰다는 표현이 답을 말해준다. 그것은 악이다. 나쁜 것이다.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장면에서 다른 것을 써야 하지 않을까? 기(氣)를 쓰고 우리는 악의 마음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애를 써야 하지 않을까? 힘이 들더라도 서로 돕고 서로 나누는 착한 일에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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