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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말로 깨닫다] 일청(日淸)과 청일(淸日) 사이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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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5  14: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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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시모노세키[下關]가 한국인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시모노세키 조약 때문일 것이다. 역사책에서 배웠기는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조차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시모노세키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내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장소를 찾은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조약 체결 장소를 찾았을 때 감회는 생각보다는 아주 화려한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긴 세월의 흐름과도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일본 역사에서 어쩌면 이곳이 가장 자랑스러운 공간이 아닐까? 하지만 방문자 중 많은 사람이 중국인과 한국인인 점은 역사를 다시 곱씹게 했다.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튼 그곳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뜨인 것은 일청전쟁(日淸戰爭)과 일청강화기념관(日淸講和記念館)이라는 어휘였다.

일청전쟁이라. 그 전쟁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전쟁을 청일전쟁(淸日戰爭)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유는 금방 짐작이 갔다. 일본이 싫어서일 거다. 다른 이유로는 오랫동안 청나라와 친선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보니 러일전쟁에서도 우리는 러시아를 앞에 두고 있었다. 러시아하고도 오랜 친선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라 이름의 순서를 만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내용을 보면서 한국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약의 첫 번째 내용이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라는 것이었으니 한국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싫어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 준다는데 어찌 기분이 나쁘겠는가마는 누구나 알다시피 이 조약의 문구는 앞으로 펼쳐지는 현실과는 사뭇 달랐다.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조선을 강점하였으니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일본에게 시모노세키조약은 자랑스러운 역사이겠지만 한국에게는 뼈아픈 역사이다. 망국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조약의 다른 내용으로는 청나라가 요동반도와 대만 등을 일본에 할양하고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인 3억 엔의 막대한 배상금을 주는 등의 청에게는 굴욕적인 역사의 장면이 있었다. 조약과 협상에는 국가 간의 감정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로의 감정을 살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중국인에게는 청일전쟁만큼 치욕적인 전쟁이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한국은 여전히 청일전쟁이라고 부르고, 여전히 중국 중심의 관점을 갖는다. 복잡한 문제다.

   
▲ 일본 시모노세키에 소재한 일청강화기념관(日淸講和記念館).
청일, 일청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여기에는 더 비참하고, 부끄러운 한국의 역사가 담겨있다. 부패한 탐관오리에 저항하는 농민들이 일으킨 동학혁명에 놀란 정부가 청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이에 텐진 조약을 근거로 일본군도 참전하게 된 것이다.

혁명을 일으킨 세력은 외세의 우세한 화력에 쓰러지게 되고, 결국은 패퇴한다. 이후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청과 일이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이어 조선 땅에서 두 나라는 혈전을 벌이고 끝내 일본이 승리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물이 시모노세키 조약이다.

자신의 역사에 외세를 끌어들이는 장면에 한국인의 분노와 서러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민중이 일으킨 혁명을 진압해 달라고 외세에 부탁하는 위정자를 가진 슬픈 백성이다. 철저하게 관군과 일본군에게 몰살당한 동학 농민들의 슬픈 분노가 느껴진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우금치마루의 통곡은 소리가 없다고 묘사되었을 것이다.

최근에 텔레비전 한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이 산하는>이라는 노래는 그 장면을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우금치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시모노세키에 다녀오고 나서 이 노래가 계속 입에 맴돈다. 시모노세키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역사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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