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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말로 깨닫다] 대통령과 압존법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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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5  11: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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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 앞에서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지칭을 하여야 할까? ‘① 대통령은 ② 대통령께서는 ③ 대통령님께서는 ④ 대통령님은’ 중에서 무엇이 맞는 답일까? 아마도 쉽게 무엇이라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표현들을 이미 방송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에 다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굳이 어색한 표현을 들자면 ①번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는 ①번의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변인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대통령은’이라고 표현하고, ‘말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놀랐다. 오랫동안 청와대 대변인 등의 말을 들으면서 왠지 어색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압존법의 문제다. 압존법이라는 표현을 종종 ‘앞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마치 더 앞에 있는 사람만 높이는 것이라 착각하는 듯하다. 압존법(壓尊法)은 존대하려는 마음을 눌러서[壓]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어른을 공대할 때 더 높은 어른 앞에서는 공대를 하지 않는 법칙이다. 자주 드는 예로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를 높이지 않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왔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압존법이다. 논리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주는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표준 화법에서는 압존법이 점점 완화되어 가고 있다.

압존법은 청자 중심의 높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청자보다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높임을 하지 않음으로써 듣는 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이 불쾌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압존법을 청자에 대한 배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청자도 화자를 생각해서 어느 정도의 높임을 허용해 주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서 할아버지의 경우에 손자가 자기 아버지를 높이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을 하는 편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라고 해도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할아버지, 형께서 오셨습니다.”라는 식의 표현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청자와 제 3의 대상의 간격과 말하는 이와 제3의 대상의 간격이 비슷하면 용납이 되는 듯하다. 아무튼 여전히 복잡한 문제이다. 앞으로 압존법은 점점 힘을 잃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 그러면 다시 청와대 대변인의 말로 돌아가 보자. 압존법에 따르면 청와대 대변인이나 관계자들이 대통령에 대해서 국민에게 말할 때는 대통령과 국민 중 누가 더 높은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대통령님께서는’이라고 하거나 ‘대통령께서는, 대통령님은’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

반면에 국민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면 ‘대통령은’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새 정부의 대변인은 국민이 더 높다고 보고 ‘대통령은’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표현은 다른 청와대 수석들의 표현에서도 발견되었다. 물론 여전히 ‘대통령님께서는’이나 ‘대통령께서는’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과 국민은 누가 더 높은가? 당연히 국민이 높지 않을까? 국민이 대통령을 뽑았고,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니 당연히 국민이 높다. 만약 왕이었다면 다르게 생각했을 수 있다. 아마 왕이라면 왕이 국민보다 더 높다고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그야말로 일꾼이다. 당연히 국민이 더 높다. ‘대통령은’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또한 ‘말씀하셨다’가 아니라, ‘말하였다’가 맞다.

하나 덧붙이자면 대통령과 대통령님의 관계는 어떠할까? 대통령님이라는 말은 최근에 생긴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로 기억하는데 ‘대통령님’이라는 표현이 생기게 된 이유는 각하와 관련이 있다. 각하라는 표현이 대통령에 대한 지칭이자 호칭이었던 때가 있다. 그런데 각하라는 말은 국민보다 대통령을 높인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각하라는 지칭과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칭에서는 각하 대신에 ‘대통령은’ 또는 ‘대통령께서는’이라고 표현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호칭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을 부를 말이 사라진 것이다. 전에는 그냥 ‘각하!’하고 부르면 되었는데, 각하를 쓰지 않으니 ‘대통령!’하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대통령님’이라는 말이 생겼다. 굳이 보자면 대통령님은 지칭에는 필요 없는 말이다. 호칭에서만 필요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칭과 지칭도 점점 민주적인 사회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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