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말은 또 다른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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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말은 또 다른 피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2.1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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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사람의 몸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고 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피를 통해서 가족을 확인하고, 민족을 확인합니다. 그만큼 혈통, 혈연은 중요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만큼 강렬하고 애절한 표현도 없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겁니다.

 
 붉은 피는 생물학적인 피입니다. 의학적인 피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내 부모와 내 형제와 내 친척과 내 민족을 잇는 보이지 않는 뿌리입니다. 하지만 같은 피가 흐른다고 모두 형제처럼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피는 우리의 근원을 확인하게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피는 바로 ‘언어’입니다. 우리말이 또 다른 피가 되는 이유입니다.
 
 재외동포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재외동포가 잘 되면 자랑스럽고, 어렵게 살면 안쓰럽습니다. 재외동포가 같은 핏줄임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재외동포에는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언어에 따라 나타나고, 언어의 차이에 따라 생각도 달라집니다. 여러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고가 깊어질 수 있음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어 사용 인구를 이야기할 때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이미 많은 재외동포는 한국말을 모릅니다.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조금 안다고 해도 사용하려고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어 사용 인구에 허수가 포함되어 있는 셈입니다. 
 
 한글학교가 아주 잘 되고 있는 미국조차 동포자녀의 20%도 안 되는 숫자만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합니다. 일본은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한국어를 배우는 동포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본에 특강을 갈 때마다 걱정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중국의 동포 자녀도 점점 한국어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에 가 보아도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최근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아이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해외입양인은 어떤가요? 해외입양인은 재외동포의 개념에도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개념도 부정확합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데다가 어려서부터 양부모님과 자랐기에 한국 문화도 완전히 낯섭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한국어의 피를 다시 돌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라는 피는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재외동포 정책에 급한 일도 많겠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언어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상황도 다급하고 심각합니다. 곧 한국어를 잃어버리는 아이들이 늘어날 겁니다. 재외동포 청소년의 한국 방문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한국에 와 본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모국에 대한 감정이 천양지차입니다. 재외동포의 한국 생활과 유학이 쉽게 바꾸어야 합니다.
 
 재외동포가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다양한 모색을 하고,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대학이 재외동포 학생들을 더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재외동포 학생들도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한국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태어난 나라에 기여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한국어는 또 다른 우리의 피입니다. 한국어는 재외동포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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