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 ‘설’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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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 ‘설’을 먹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1.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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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한국인의 나이는 참 어렵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나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식 나이라는 말을 쓴다. 설명도 길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늘 의문은 남는다. 왜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이 1월 1일이 되면 이틀 만에 두 살이 될까?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고, 다음날 해가 바뀌어 한 살을 더 먹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자들은 한국인의 나이를 설명할 때 뱃속의 한 살을 이야기한다. 엄마 뱃속에서 1년을 지내니 한 살을 먹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엄마의 몸속에 점지 되는 순간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아름다운 사고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말이 있는데 아버지의 몸을 떠나 어머니의 몸으로 온 순간 생명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일리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왜 ‘열 달’이 아니고 ‘1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긴 하다. 

 요즘 한국의 나이는 더 복잡해 졌다. 왜냐하면 한국의 나이는 학년과 맞물려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빠른’ 나이가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빠른 96’과 ‘그냥 96’은 다른 나이나 마찬가지다. 빠른 96은 보통 학교를 일찍 들어가기 때문에 그냥 96보다는 한 학년 위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정말 혼동이 될 것이다. 몇 살이냐고 물었다가 다시 질문해야 할 게 한 가득이다. 한국 나이예요? 만으로는 어떻게 돼요? 몇 년생이에요? ‘빠른’인가요? 이러다가 나이 든 사람을 만나면 ‘호적이 잘못 되어 있다.’는 말까지 듣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우리의 나이 체계를 보면서 좀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은 ‘설날’의 ‘설’에서 왔다. 그래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몇 번 ‘설’을 지냈는지가 내 나이가 된다. 누구나 똑같이 설을 지나면 나이를 먹기 때문에 생일하고는 상관이 없다. ‘몇 설을 지냈어요?’라는 질문이 사실 ‘몇 살이에요?’인 셈이다. 여기에 뱃속의 1년을 더하니 복잡해진 거다. 그래서 이틀 만에 두 살이 되는 문제가 생긴다. 뱃속의 나이나 ‘설’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 사람에게 나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특히 존댓말과 관련해서는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이 때문에 존대의 서열이 정해지고 그래서 싸우기도 한다. 물론 존댓말이 나이 때문에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위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이가 적어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반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친분 관계도 존댓말의 원인이 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했다가 큰일 난다. 모르는 중고등학생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마라. 큰일 나는 경우가 있다.

 나이는 친구를 사귀는 데도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 호칭은 친족어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이 그대로 호칭이 된다. 나이에 따라 이런 호칭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사용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형, 누나,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동생’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요즘에는 ‘동생’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순간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요즘 젊은 사람은 ‘동생’이라고 잘 안 부른다.

 나이가 사람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특히 친구를 사귀는 데 나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친구인데도 자꾸 나이를 따지기 때문이다. 사실 옛날에는 친구 사이에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섯 살 정도의 차이는 그대로 친구가 되었고, 그 이상도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우는 사이가 되면 친구인 것이다. 나이에 얽매여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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