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오냐 오냐’를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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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오냐 오냐’를 안 한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2.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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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우리말에 ‘오냐 오냐 했더니’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더니 버릇이 없어졌다는 의미로 쓰인다. 부모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게 좋은지, 부모의 기준대로 못하게 하는 게 좋은 지 늘 결론이 안 난다. 이 표현이 재미있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오냐’라는 말을 안 한다는 점이다. ‘오냐’는 보통 ‘응’이라는 말 대신 쓸 수 있다. 아랫사람에게 쓰는 표현이고 종종 장난으로 친구들에게도 쓴다. ‘예’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냐’라는 표현을 어릴 적에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응’이라는 표현과 함께 ‘오냐’라는 말도 많이 썼다. 그래서 위의 표현도 나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냐’라는 표현을 거의 안 쓴다. 만약에 ‘나는 쓴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이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우리말에서 ‘오냐’는 사라지는 말이 되어 버렸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중요한 어휘가 사라진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슬픈 일이다. 특히 문물과 관련된 어휘가 아니라 일상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오늘은 사라지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문명어는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삐삐’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이제 없다. 왜냐하면 ‘삐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디오 가게’도 사라지는 말이 되고 있다. 결혼식 때 찍은 비디오를 볼 수 없는 집이 엄청 많다. 왜냐하면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벌써 다 버렸다. 예전에 전축을 버려서 ‘LP’를 듣지 못하였듯이 말이다.

 아이들은 ‘카세트’라는 말을 모른다. 카세트를 본 적도 없다. 타자기는 어떤가? ‘찬장’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다. ‘장롱’도 어쩌면 붙박이장에 밀려 사라질 수도 있다. 예전에 연인들이 만나던 ‘경양식’ 집도 아이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어휘다. ‘고고 장’이 무슨 뜻인지 알까?  

 속담은 속담 자체도 어렵지만 그 속에 어휘는 더 어렵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생활 속의 어휘였을 텐데 지금은 설명을 해 줘도 모른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이유는 무언가?

 ‘풍월’은 무엇인데 읊는가? 굴뚝이 있어도 때지를 않으니 설명이 필요하다.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를 설명하려면 ‘부뚜막’에서 시간이 다 지나간다. 어휘가 세대 간의 소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단지 한 세대 만에 수많은 어휘와 표현이 사라져 버렸고 날마다 새로운 표현이 생겨난다.

 우리말의 상대높임법을 설명할 때 ‘해라, 하게, 하오, 하십시오’로 구분한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사용하는 표현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만에 ‘하게’와 ‘하오’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되었다. 그야말로 ‘사극의 말투’가 되어 버렸다.

 최근에서 사극에서 말고 ‘어서 오오’, ‘잘 가오.’와 같은 표현을 들은 적이 있는가? 사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있는가? ‘하게’를 사용하는 사람은 가끔 있는데 젊은 사람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 앉게!’, ‘조용히 하게!’라는 표현은 익숙한가?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고 있다.

 이제는 ‘함자, 존함, 춘추’ 등의 표현을 쓰는 게 예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게 아니라 나이 들었다는 증거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에게 ‘본관’과 ‘항렬’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많은 친척 관계어도 완전히 암호가 되고 있다. ‘당숙’은 누구인가? ‘질부, 질녀’는 아이에게 ‘TV 진품명품’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이미 ‘도련님’과 ‘서방님’은 사용도 잘 안 하고, 구별도 잘 못한다. 이러한 표현도 얼마 안 가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점점 우리말을 가르치고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말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