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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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오해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1.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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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한국인은 교육열이 매우 높은 민족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우리만 그렇게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의 경우도 교육열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이 나라들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유교는 열심히 배울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의 논어에도 첫 한자가 ‘학(學)’이다. 유명한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로 시작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잘못, 또는 오해함으로써 많은 아이들이 고통 속에 있게 된다.

얼마 전 뉴스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인 국가가 한국으로 조사되었다. 그것도 꼴찌 바로 위와는 격차가 큰 단독 꼴찌이다. 부끄러우면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만족도가 떨어진 원인 중 첫 번째가 학업스트레스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한창 배워야 할 아이들이 배우는 게 스트레스라니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고는 아이들이 행복해 질 수 없다.

나는 전에 학습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학이시습’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학이시습’을 설명할 때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으로 해석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학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때때로의 어감이 ‘자주’라는 느낌도 아니고, ‘열성’도 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석을 ‘틈만 나면’이나 ‘시간이 생길 때마다’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배우는 것이 즐거운 느낌이 난다. ‘학’과 ‘습’의 의미도 ‘배우는 것’과 ‘배운 것을 직접 해 보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봐야 한다.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배운 것을 자꾸 해 보고 싶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가끔이 아니라 틈만 나면 해 보고 싶어야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나.’라는 말도 한다. 이런 말의 관점이 문제다.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그리고 공부를 단지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자신과의 경쟁이 아니라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즐거울 수 없다.

공부에 대해서 ‘학이시습’을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즐거움’이다. 공자는 분명히 학습을 이야기하면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씀하셨다. 공부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즐겁지 않은 공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쳐주면 재미있다.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공부하면 공부는 얼마든지 신이 날 수 있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이 아니라면,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면 공부도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공부가 스트레스가 아니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 즐거운 학습법을 위해서 교사와 연구자들은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가 재미없다면 그것은 선생님이 재미없게 가르쳐서라는 말을 뼈저리게 새겨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동기 유발을 위해서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진로, 장래를 위해서도 정부부터 부모까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